세계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중동 아부다비 자본의 행보가 거침없다.
지난해 AMD의 제조부문을, 올 9월에는 싱가포르 ‘차터드’를 각각 인수했으며, 최근엔 중동에 반도체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덩치를 갖추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 선두인 대만 TSMC는 물론이고 2위권 진입을 노리는 삼성전자에도 부담스러운 경쟁자로 떠올랐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토호국의 국영투자회사인 ATIC의 왈리드 알 무하이리 회장은 최근 열린 한 포럼에서 “앞으로 4년 내 이곳에 파운드리공장이 세워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프라 구축을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긴밀히 협력할 예정이며 오는 2030년까지 아부다비 내 반도체산업 종사자만 4만명에 이를 정도로 키울 것”이라는 구체적 구상도 덧붙였다.
중동 오일머니에 기반을 둔 ATIC는 지난해 10월 AMD의 생산부문을 인수하며 세계 파운드리산업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AMD의 독일 드레스덴공장을 가져가면서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 Foundries)’를 출범시켜 단숨에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파운드리업계 4위인 싱가포르 차터드마저 인수하는 데 성공, 규모를 더욱 키웠다.
인수합병(M&A)뿐만 아니라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직접 설비투자에도 나선다. 글로벌파운드리스는 지난 7월 뉴욕주 북부에 최첨단 파운드리공장을 착공해 2012년 가동 예정이다. 중동공장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셈이다.
ATIC의 공격적인 행보는 ‘스케일 게임(규모의 경제)’을 통해 세계 시장 1위 TSMC와 경쟁을 펼쳐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무하이리 회장은 “앞으로 규모가 작은 파운드리업체들은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는 2년 내 2위 자리에 올라 TSMC와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ATIC의 2위 등극이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후발 주자들로선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이 불가피한 형국이다. 파운드리업계 관계자는 “특화한 시장을 개척하지 않는 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앞으로 더욱 힘에 부치게 된다”며 “글로벌 파운드리의 부상은 합종연횡을 더욱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ATIC의 공세는 파운드리 시장 절대 강자인 대만 TSMC보다 삼성전자에 더 위협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세계 일류화 상품으로 선정, 해외 우수 인력 확보에 나서는 등 최근 의욕적인 사업 확장에 들어갔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지난해 220억달러에서 오는 2012년 32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일반 반도체 시장보다 높은 연평균 9%의 성장률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지난해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대만 TSMC는 무려 102억달러나 벌어들여 독주체제를 굳혔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