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달러 시대, 벤처가 열자

실패한 창업자도 다시 뛸 수 있게 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요즘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일자리가 못 따라간다는 데 고민이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뿐 아니고 온 세계가 고민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용평 관광산업경쟁력 강화 회의)

 우리 경제가 중병에 빠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금융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실상 100만명을 넘는 ‘청년백수’는 줄 기미가 없다. 대기업은 매출이 느는 만큼 사람을 늘리지 못하는 구조다. 생계형 창업은 이미 OECD에서 가장 높은 자영업 비중을 보이는 상황에서 삶의 질만 악화시킬 뿐이다. 대안은 벤처로 대변되는 기술 창업이다. IMF 때 우리는 경험했다. 벤처는 고용과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후유증도 적지 않았지만 순기능 측면을 다시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벤처 창업과 성장, 재도전에 기반을 둔 생태계 조성 방안을 3회에 걸쳐 제안한다.

 한 달이 멀다하고 정부가 터뜨리는 것이 있다.

 우리의 ‘차세대 먹거리’인 성장동력원이다. 그린(녹색) 등 IT를 축으로 한 이들 유망산업에 정부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산업계 관심도 드높다. 대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으며, 중소·벤처기업들도 가세했다.

 정부가 각종 산업 활성화 대책을 열심히 내놓지만 이상하게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이유는 역동적인 창업이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정부의 새로운 성장동력 발표에 기존 인력을 활용하거나 소수의 전문인력만을 채용해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올해 증가한 벤처기업 4000곳 가운데 3000개사가 이 같은 사업 전환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양한 문제점을 낳는다. 기존 기업들은 안정을 추구한다. 과감한 투자에 약하다. 남이 생각지 못한 핵심기술이나 튀는 아이디어가 부족하다. 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지 못하며,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 순발력에도 약하다.

 과거 2000년 전후의 벤처 붐을 꺼내보자. 당시 하루를 멀다하고 가히 상식을 깨는 독특한 아이디어 기술들이 튀어나왔다. 비록 성공한 것은 극히 일부에 그쳤지만 이는 분명 우리 IT산업이 지금까지 성장·발전하는 데 공헌을 했다. 대기업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결론은 나왔다. 새 먹거리를 뒷받침할 창업가를 양성해야 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벤처 붐 시절을 떠올리면 된다. 대학생, 기업 그리고 연구소에 그 답이 있다. 이들이 다시 창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민관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의 창업과 투자심리를 반영하는 기업가정신 지수는 끝없이 추락했다.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 지난 2000년 53점에서 2007년 18점으로 급락했다. 도전정신이 사라진 셈이다. 1999년 20∼30대 벤처기업가 비중이 58%로 절반을 넘었지만 올해 11.9%까지 떨어졌다. 당연히 40∼50대 비중은 폭등했다. 안타깝지만 이들이 고위험고수익(하이리스크하이리턴)에 뛰어들기 힘들다.

 이민화 기업호민관(KAIST 초빙교수)은 “2000년 대학에서 150명이 창업을 원했다면 지금은 그 수가 5명에 불과하다”며 “이는 창업에 대한 기대 이익이 위험보다 작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행스럽게 최근 일부 대기업이 사내 벤처를 늘린다. 직원 신분을 유지하며 2∼3년간의 인큐베이터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이다. 이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들이 사내벤처를 거쳐 역동적인 기술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업뿐만 아니다. 대학생과 연구원들이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지주회사도 활용해야 한다. 잠재 창업가들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창업 시 과감한 기술개발 자금을 지원하는 방법도 해법이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예비창업자들이 여전히 창업에 따른 리스크 부담을 크게 안고 있다”며 “이들이 시장에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자금에서 판로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지원방안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패한 벤처기업가의 재기를 돕는 일이다. 순수한 열정으로 뛰어들었다가 실패했다손 치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문화도 요구된다. 그 경험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민관의 따뜻한 시각도 절실히 요구된다.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한국에 있었으면, 신용불량자가 됐을 것”이라는 1세대 벤처기업가들의 경구를 새겨들어야 한다. 이들의 실패를 인정하고 재활을 도울 때, 사라진 기업가정신이 돌아온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최근 보고서는 국민소득 2만달러까지의 성장은 생산 요소의 투입으로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의 확산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는 3만달러로 갈 준비가 돼 있는가.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