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사면론 `솔솔`…삼성은 `침묵`

최근 급부상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론에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면은 국가원수의 특권으로, 형 선고의 효과를 없애는 것이다.

◇사면론 왜 나오나=이 전 회장은 올해 8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일부 배임 및 조세포탈죄가 확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았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의 사면은 이 같은 법적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무엇보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시기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그의 경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리한다.

실제로 이 전 회장의 사면론을 처음 들고 나온 것은 김진선 강원지사다.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 지사는 지난 17일 “내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평창에 대한 IOC 현장 실사를 앞두고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복권을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는 IOC 위원의 활동이 가장 중요한데 한국은 문대성 선수위원 외에는 IOC 위원이 없는 상태”라며 그 같이 밝혔다.

이 전 회장이 IOC 위원인 점을 십분 활용해야 2차례나 연거푸 실패했던 평창의 3번째(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논리다.

이 전 회장은 1,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인 지난해 7월 자신을 둘러싼 사법적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IOC 의원 자격을 ‘자발적으로’ 정지하는 결정을 내리고 IOC 집행위 측에 그런 뜻을 전달했다. 따라서 지난 8월 확정된 형이 유효한 이상 이 전 회장의 IOC 활동 재개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 측이 조급해하는 배경을 들여다보면 유치전을 벌일 수 있는 시간의 제약 때문이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일 뮌헨 및 프랑스 안시 등 유럽의 ‘강호’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뮌헨은 토마스 바흐 IOC 부위원장 등 IOC 위원 3명이, 안시도 2명의 IOC 위원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내년 2월 밴쿠버올림픽 때의 IOC 총회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2011년)을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IOC 총회여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이 절정에 오르는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 지사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양호 평창 동계올림픽유치위 공동위원장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다양한 인맥을 구축한 이건희 위원이 조속히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이 전 회장에 대한 사면을 공개청원한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이와 관련,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동계올림픽 유치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이 전 회장이 연내에 사면받기를 바라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성탄절 특사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되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 전 회장은 삼성이 올림픽을 후원하기 때문에 IOC 내는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전 회장의 IOC 활동 재개는 평창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 반응은=체육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이 전 회장의 사면론에 대해 삼성은 공식반응을 삼간 채 철저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전 회장의 사면문제가 삼성에는 오너 중심 체제로의 정상화를 이루는 발판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적인 논란의 중심으로 빠져드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등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은 내부적으로는 일절 거론하지 않는 이번 사면 문제가 ‘재벌 봐주기’ 논란으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이전에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복권이 형 확정 후 2~3개월 안에 이뤄진 전례가 있긴 하지만 삼성을 보는 일각의 시각이 남다른 까닭이다.

또 사면 청원의 전제가 돼 버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낙관만 하기가 어려운 점도 삼성으로서는 큰 부담이다.

만에 하나 이 전 회장이 유치활동에 뛰어든 상황에서 평창이 다른 도시들과의 경쟁에서 질 경우 그에 따른 비판이 이 전 회장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에 쏠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은 2007년 7월에도 과테말라 IOC 총회를 20여 일 앞두고 브라질 등 중남미 6개국을 방문하며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평창은 당시 러시아의 소치에 밀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유치에 실패했다.

재계의 한 소식통은 “이 전 회장의 사면론은 삼성 입장에선 달다고도, 쓰다고도 할 수 없는 미묘한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