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벤처가 열자] (중)벤처생태계, 대기업이 나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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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처는 다르다’고 말한다. 일반 기업이 ‘위험(리스크)’을 회피한다면 벤처기업은 이를 즐긴다. 벤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고위험고수익(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꼽는 이유다. 그래서 나름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일반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사회 구조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벤처생태계의 핵심은 ‘자본’이다. 위험을 추구하는 벤처기업에 은행 등 일반 금융자금은 시장논리에 따라 집행될 수 없다. 그래서 이들 벤처에 투자하는 자금을 ‘벤처캐피털’로 별도로 분류한다. 벤처캐피털은 적게는 4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투자 실패 사례를 감안해서다.

 이런 한국 벤처캐피털산업이 ‘벤처 버블기’ 이후 정체성이 크게 흔들렸다. 이유는 민간 참여 저조다. 에인절 투자자를 포함 기업 참여가 너무 저조하다. 과거와 같은 벤처붐이 일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 덕분에 출범 벤처펀드의 정부(모태펀드) 의존도만 높아졌다. 올해 들어 90%(투자금액 기준)를 넘어섰다. 정부가 손을 떼면 한국 벤처캐피털산업은 송두리째 흔들리거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벤처 투자자로 대기업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 IT 산업의 성장 발전에 벤처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대기업과 함께 신시장을 만들어왔다. PC와 휴대폰이 그래왔고 반도체·LCD도 마찬가지다. 이들 벤처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대기업들은 해외 기술과 부품·소재에 의존해야 했을 것이며 이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굳이 ‘상생’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등장할 ‘먹거리’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잡으려면 대기업이 벤처를 챙겨야 한다. 방법은 많다. 2000년 전후와 마찬가지로 사내벤처를 육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벤처펀드의 출자자(펀드투자자·LP)로 참여할 수도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기술 급변 속에서 순발력이 떨어지는 대기업의 기술적 한계를 보충할 수 있다. 기술개발 과정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수도 있다. 10대 그룹의 유보율이 1000%를 넘는 등 사내에 돈이 넘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가치’는 충분하다.

 제도 개선은 정부의 몫이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대기업들이 단순 출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자가 되면 대기업 계열사 등 여러 문제가 생긴다”며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없애기 위한 투자 대상을 완화하는 등 규제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대기업의 벤처투자에 경영권을 고려해 지분을 제한할 수 있지만 무조건 계열사로 편입시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도 시급하다. 대기업의 벤처투자를 더 이상 ‘문어발식 확장’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대기업들과 이들 벤처가 함께 차세대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시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15%에 불과하다. 미국(0.4%)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 경제에서 벤처의 역할을 고려할 때 매우 낮은 수치다. 이 비율을 미국 수준으로 올리려면 대기업과 정부가 나서야 한다. 막대한 자금을 쌓아놓고 있는 대기업 그리고 규제를 완화해야 하는 정부의 빠른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