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을 갓 넘긴 김희정 한국인터넷진흥원장은 미래 네트워크 화두를 꺼내자마자 대뜸 빨래 얘기부터 한다.
“약간만 상상해보세요.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기만 하면 옷을 보호하는 인증SW가 섬유 종류를 자동 인식합니다. 그 결과에 따라 수량·온도·회전방식 등 최적화된 세탁SW를 다운받고 세탁기가 스스로 빨래를 하는 거죠. 사람과 기계, 기계와 기계가 연결되는 미래 인터넷 환경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얘깁니다.”
빨래에서 시작된 얘기는 자동차로 금새 옮겨간다.
“지금은 3000㏄ 자동차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배기량을 사용하죠. 하지만 여기에 지능이 더해지고 통신망이 연결되면 운전자에 따라, 운전 습관에 따라, 지형에 따라 1000㏄만 구동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전기자동차가 대중화하면 어느 회사 전기가 제일 저렴한지 필요한 정보만 쏙쏙 골라주는 것은 물론이구요.”
거창한 미래 인터넷 키워드가 나올 것이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김 원장은 거대한 담론이 아닌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에서 미래 네트워크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취임 후 인터넷진흥원의 미션을 일반들의 삶에 파고드는 정책 활동으로 대중화시키고자 부단하게 애쓰는 고민이 미래 네트워크에도 묻어나고 있는 셈이다.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 한나라당 부대변인 시절 언론 담당 업무를 맡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인터넷 언론과 무가지, 여성잡지를 스스로 맡겠다고 했던 김 원장은 비록 인터넷 기술 전문가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인터넷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래서 사람과 환경, 기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마트 네트워크 구현으로 사용자에 의한, 사용자를 위한, 사용자의 인터넷 서비스 구현이 종착점이라는 게 김 원장의 명쾌한 결론이다. 김 원장은 “미래 인터넷이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며 미래 인터넷을 구현하는 네트워크는 만물지능 통신이 될 것”이라며 “개인의 상황에 맞는 인터넷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래 네트워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확장성과 호환성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새로운 서비스와 기기가 나오면 기존 만물지능 통신에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표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각 사물과 서비스의 보안수준이 전체적으로 고르게 높아져야 한다는 지론도 갖고 있다.
#“자체 예산으로도 미래인터넷 적극 추진할 것”
미래 네트워크는 어느 영역보다 정부 투자가 필요한 분야다. 그러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의 예산지원은 녹록하지 않다. 그러나 김 원장은 자체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미래 네트워크를 위한 준비작업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KISA 원장에 취임한 후 약 4개월 동안 조직을 새롭게 가다듬으면서 많은 부서를 통폐합하고 줄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새롭게 만든 조직이 있습니다. 바로 미래인터넷팀입니다.”
정부 예산지원이 없는데도 미래인터넷팀을 신설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육성의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KISA의 자체 수익사업으로 확보된 예산을 통해 힘있게 미래인터넷팀을 끌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DDoS 대란 피해를 최소화한 것은 ‘초딩’ 덕(?)”
미래 네트워크와 미래인터넷에 대한 개념을 세워 나가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비전이라면 안전하고 편리한, 동시에 막힘 없는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당면 과제다. 일부 소수계층이 아닌,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들 누구나 질높은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KISA가 많은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우리 모두의 리그’에 보다 역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DDoS 대란 때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이 먼저 정보를 알고 가정 내 PC를 좀비PC로 만들지 않기 위해 패치를 스스로 깔았습니다. 국민들의 생활 말단에서 구현되는 것이 인터넷 서비스인데 정작 스팸메일은 어떻게 차단하는지, 쇼핑사기에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안 위협에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모릅니다.”
인터넷 부작용 해결을 도와주는 핫라인으로 ‘118’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노력의 일환이다. 또 각종 로고송을 만들고 생활 속에서 작아 보이지만 꼭 쓰이는 긴요한 물품에도 홍보전략을 구사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현재 초·중등학생 대상으로 IT스카우트(가칭)를 만들고 흩어져 있는 인터넷 윤리·정보보호 등 다양한 교육을 하나로 묶는 것은 2020년 미래네트워크 시대의 주역인 청소년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 “드라마 아이리스 봤어요?”
구 정보보호진흥원이 인터넷진흥원으로 통합된 만큼 사이버 보안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미래네트워크 시대에 모든 것들이 융합화되는 환경에서 보안은 네트워크 인프라보다 더욱 중요한 이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김 원장은 드라마 ‘아이리스’를 이야기했다.
“얼마 전 실무진에 드라마 ‘아이리스’에 나오는 정보보안이 어떻게 구현되며 보안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어떤 해결방안이 있는지 자료를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비록 가상의 드라마긴 하지만 모든 것이 융복합화되는 미래에서는 일상 생활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안 분야에서의 핵심 키워드로 김 원장은 응용·융복합 서비스 보안을 강조했다. 미래 인터넷에서의 보안 서비스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미래 인터넷에서는 가장 취약한 부분 한 곳만 뚫려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보안의 수준이 네트워크, 단말, 이용자 등 모든 부분에서 똑같이 높아져야 하며 어렸을 때부터 보안 서비스 활용과 보안의 중요성을 몸에 익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