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인수합병(M&A) 사기를 당해 폐업한 벤처 사업가 A모씨. 그는 이후 개인사업가로 어렵게 재기했다. 직원도 채용하며 기술 개발에 여념이 없던 그는 최근 정부 지원 과제에 신청했다가 크게 낙담했다. ‘개인회생·파생·면책권자’는 신청 자격에서 제외된다는 것. 그는 “패자에게도 기회를 부여해서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풍토가 조성돼야 청년 창업이 활성화하고 대한민국에도 미래가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한국과 미국 벤처생태계의 큰 차이점은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벤처는 실패를 재도약을 위한 중요한 발판으로 삼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한번의 실패가 곧 ‘영구 퇴출’을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실패의 소중한 경험이 사장되고 그 노하우가 전혀 발휘되지 않으면서 한국 벤처 산업이 10년이 넘는 오랜 역사에도 성장·발전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비판의 중심에는 금융권 전반에 깔린 ‘연대보증제도’가 있다. 연대보증제도는 고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벤처기업에 크나큰 부담이다. 기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금융권에 문을 두드리는 순간, 연대보증이라는 족쇄가 채워진다. 사업이 성공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예상치 못한 시장 환경 변화 또는 기술개발 한계에 봉착 시, ‘채무자’로서 사회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무엇보다 신규 창업의 제약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다.
창업은 하나의 ‘분위기’며 ‘트렌드’다. 정부가 아무리 많은 혜택을 준다고 해도 문화가 형성되지 않으면 창업은 없다. 지난 2000년 전후 ‘벤처 붐’ 당시 창업해 성공한 사람도 많았지만 실패 사례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이들 실패한 벤처기업가의 삶은 가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어렵다. 비록 소수 성공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실패한 사례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분명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도 똑같이 될 수 있다’는 공포다.
이민화 기업호민관(KAIST 초빙교수)은 “젊은이들이 창업을 하지 않는 것은 과거 벤처의 학습 효과 결과다. 벤처에 도전했다가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에도 주마다 재도전의 기회를 열어 놓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는데 제도에 따라 창업 활성화가 크게 차이를 보인다. 이는 우리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도 벤처 재도전 기회를 열어주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재도전 기회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전에는 그랬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우리나라 회계와 공시 시스템을 봤을 때 이를 선별할 수 있는 수준에 충분히 도달했다. 회사 자산을 유용하거나 횡령하면 강력한 처벌 등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패한 사업가가 재기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요구도 나온다. 이미순 벤처기업협회 벤처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 번 실패로 폐인처럼 생활하는 벤처인이 많다”며 “이들이 기존 기업을 순탄하게 폐업하고 다시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컨설팅 등 교육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비창업자들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우려해 창업에 쉽게 나서지를 못한다. 1인 창조기업 육성이 나올 정도로 창업에 기반을 두고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는 정부는 이 같은 예비창업자들의 우려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 아무리 지원책이 많아도 잠재창업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창업 활성화는 쉽지 않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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