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 한국형 N세대

[이머징 이슈] 한국형 N세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버릇없는 성향을 지적할 뿐 칭찬하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서도 ‘요즘 젊은이들은 놀기만 하고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른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발견된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고 별 생각 없이 사는 듯한 젊은이들을 규정하는 ‘△△세대론’은 흥미롭지만 어딘가 편향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외국학자가 만든 세대론을 도입할 때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반드시 걸러줘야 한다.

 휴대폰과 인터넷의 폭발적 확산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던 디지털 신세대가 사회 전면에 뛰어들고 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직장생활 새내기의 행태를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다. 일도 열심히 안 하면서 복지나 혜택만 챙기는 건 그렇다고 치자. 회식이나 체육대회 같은 모임은 얘기만 들어도 표정이 굳어진다.

 업무시간에 집중하지 않고 블로그나 메신저를 들여다보는 행태를 지적하면 금세 눈을 치켜뜬다.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도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내는 걸 보면 참신한 구석은 있다. 회사 일은 대충하는 것 같은데 취미생활에는 전문가 뺨치는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바깥 세상과 항상 접속해 있는 신세대는 대체 누구인가.

 미래 비즈니스 전략가인 돈 탭스콧은 이들을 N세대라고 부른다.

 N세대는 1970년대 후반 이후 출생해 PC 보급과 함께 유소년기를 보냈으며 청소년기에는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사회화를 경험했다.

 탭스콧은 N세대에게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표현도 쓴다. 성인이 된 다음에 디지털 기술을 익혀 활용한 부모세대가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였다면 N세대는 디지털을 공기처럼 호흡하며 자란 ‘원주민’이라는 뜻이다. 생활방식, 가치관, 인간관계, 사고방식, 학습법 등이 부모세대와 전혀 다른 디지털 세대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디지털 장비와 문화에 어떤 거부감도 없고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디지털 기기 매뉴얼은 보지 않는다. 네이티브는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원을 접하면서 멀티태스킹과 같이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법을 익혔다. 또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인스턴트 메신저 등을 이용해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해왔기 때문에 어떤 행위에 신속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즐긴다. 싸이월드, 트위터, 마이스페이스 등 SNS나 블로그 등과 같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즐긴다.

 이들에게는 놀이와 일이 구분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자’가 아니라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일에 몰입한다. 돈 탭스콧은 N세대, 혹은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로 규정했다. 1.선택과 자유를 중시하고 2.개성에 따른 맞춤형을 선호하고 3.철저한 조사·분석을 하며 4.기업의 성실성을 중시하고 5.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길 바라고 6.협업에 탁월하고 7.속도와 8.혁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돈 탭스콧의 연구는 버릇없는 신세대에 대한 편견을 깨고 N세대의 긍정적인 측면을 새롭게 발굴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새롭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북미지역에서 나온 디지털 네이티브란 개념을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잖은 무리가 따른다. 어차피 외국학자가 한국의 디지털 신세대를 한국인보다 잘 이해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N세대, 디지털 네이티브와 무엇이 다른가=한국 N세대는 IT강국의 신세대답게 디지털 원어민이라는 DNA를 대부분 공유하면서도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의 N세대는 어려서부터 핵가족 속에서 왕자,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에 자신감을 키워왔다. 한편으로 치열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도록 교육을 받은 탓에 자신의 욕망 추구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측면을 보인다.

 한국 N세대는 강한 자의식에 따라서 선택과 자유, 개성에 따른 맞춤형을 선호하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가끔씩 자신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교훈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한국 N세대의 주된 특징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사안을 제외하고는 무관심하거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가 민주화된 탓도 있지만 N세대가 한창 대학 생활을 영위하던 때 이미 투쟁은 주 관심사가 아니었다. 탭스콧은 N세대가 사회전반을 철저하게 조사, 분석하는 감시자라고 평가하지만 한국의 N세대는 선배세대에 비해서 사회, 정치적 이슈에 비교적 둔감하다. 연예인 사생활을 파헤치거나 신형 전자제품의 장단점을 분석할 때는 냉철하고 깐깐하면서도 여타 사회 이슈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온라인 게시판을 보면 토론이슈에 따라 세대차가 극명하게 나뉜다. 좌우파의 정치적 이슈를 논쟁하는 키보드 워리어들은 온라인 경력이 오래된 중장년층이 많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한마디에 들고 일어난 네티즌 수사대의 주력부대는 N세대다.

 한국 N세대의 특징은 경제적 부에 대한 집착이 이전 세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된 경기침체로 N세대는 부모의 경제지원 없이는 자신의 꿈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민주화 이후 투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상당 부분 ‘돈’과 ‘직장’이 자리 잡았다. 경제공부를 해도 사회적 부의 창출이 아니라 재테크가 주된 목적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취업을 할 때 기업의 성실성과 정직성을 중시한다는 탭스콧의 주장은 한국사회에서는 설득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살인적인 취업경쟁을 뚫고 사회진입에 목을 매는 N세대에게는 배부른 이야기일 뿐이다.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에 창의성이 인정되면서 대우도 좋은 기업은 여간해서는 찾기가 힘들다. 솔직히 연봉 높고 편한 직장이 최고 아닌가. 기업 총수가 탈세를 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도 해당기업의 취업 선호도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N세대는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직장이란 TV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N세대는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협업에 능숙하고 속도와 혁신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삶의 목적성은 앞 세대와 다소 다르다. 거창한 꿈보다는 가능한 빨리 경제기반을 다지고 즐겁게 사는 것이 이상적 목표다. 그래서 대학 입학부터 고시, 혹은 공기업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최고 인기 동아리로 재테크 동아리가 떠오르는 것이다. N세대도 온라인에서는 혁신, 진보적 가치를 옹호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행동하는 방식은 꽤 다르다. 일찍부터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는 한국 N세대의 성향은 혁신과 모험을 추구하던 1990년대 후반의 초창기 네티즌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한국의 N세대는 세계 최고의 IT 환경 덕분에 디지털 원어민의 우수한 자질을 갖추고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특수성으로 돈 탭스콧의 가정과는 다소 상이한 형태로 진화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N세대가 숨겨진 장점과 재능을 발휘하기에 제약조건이 많다. 장기간 경제불황, 폐쇄적인 교육제도, 노골화되는 인터넷 통제, 보수적 정치시스템 등이 그것이다. 기성세대의 눈에 비치는 N세대의 자유분방과 이기적 모습 뒤에는 무한경쟁 속에서 ‘질 좋은 상품’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비애가 있다.

 한국이 IT강국으로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 우리 N세대의 숨겨진 장점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기성세대의 이해와 뒷받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배일한·최순욱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