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재매각 본격 착수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이 재매각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그러나 효성이 인수 협상을 포기한 지 채 2주도 안 돼 새 주인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이닉스의 실적이 크게 개선돼 주가(인수대금)도 갈수록 부담스럽다. 결국 채권단은 조기에 지분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으로 ‘블록 세일’을 택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25일 주관은행인 외환은행은 주주협의회의 의견 수렴 결과, ‘공개경쟁입찰 방식을 통한 하이닉스 반도체 재매각’ 안건이 9개 기관 모두 100% 동의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외환은행 측은 “하이닉스 영업실적이 호전되고 반도체 시황이 상승세를 유지해 지금이 매각 적기라고 판단, 별다른 이견 없이 (재매각) 안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외환은행은 내달 20일께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공개경쟁입찰 방식의 매각을 공고한 뒤 내년 1월 말까지 인수의향서(LOI)를 받을 예정이다. 이날 주주협의회는 재매각 안건 외 지분 분할 매각 등 구체적인 매각 방법을 결정하지 않았다. 주주협의회 측은 “기업들의 인수 의향을 확인한 후에나 생각할 문제”라고 밝혔다. 매각 협상 과정에서 ‘딜’을 성사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카드를 염두에 두겠다는 뜻이다.

 공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효성의 인수 철회 후 또 다른 인수 기업이 나올지가 관건이다. 시장은 LG그룹 등 새 인수 후보들의 등장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인수 희망자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하이닉스는 3분기부터 영업흑자로 돌아서는 등 덩치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효성도 올해 들어 급상승한 하이닉스 주가를 부담스러워했는데 이런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새 후보가 나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재매각이 무산되면 주주협의회는 다시 회의를 열어 또 다른 지분 매각 방안을 결정해야 한다. 하이닉스 채권단 안팎에서 거론되는 가장 유력한 대안은 블록 세일(대량거래)을 통한 지분 분산이다. 주주협의회가 28%의 보유 지분 중 일부만 놔둔 채 나머지를 국민연금이나 기관투자자 등에 매각하는 방안이다. 이 같은 지분 분산을 통해 하이닉스를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로 바꾸는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협의회가 효성 인수 철회 후 채 일주일도 안 돼 재매각 방침을 정한 것은 결국 블록 세일에 들어가기 위한 대외 명분 쌓기라는 분석도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결정되지도 않은 사안들을 놓고 외부에서 수많은 억측이 나온다”며 “재매각이 실패하면 그때 가서 주주협의회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용어설명=블록 세일

일정 지분을 개인 또는 기관·기금 등 특정 주체와 계약하고 일괄 매각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도 계약 주체가 될 수 있지만 주로 기관투자자에게 넘기는 것을 블록 세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