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만과 같은 무대에서 경쟁을 벌여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마츠우라 모토오 주켄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겸손이 몸에 익은 일본 기업인들의 정서를 감안해도 놀라운 수위의 답변이었다. 한국 부품·소재 산업의 발전을 칭찬하며, 산업 동향을 묻는 일본 기업인들이 많아졌다. 엔고 현상으로 일본 기업들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부품·소재 시장에서 점유율을 조금씩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후지카와 주니치 도레이 부사장은 “소재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이 기술적 장벽을 구축하고 있지만 엔고가 지속되면 문제가 된다”면서 “1달러당 88엔인 지금 환율이 100엔 수준은 돼야 기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할 수 있으면 해봐라’는 식으로 냉소를 보였던 일본 언론들도 이제는 한국 부품·소재 기업들의 기술 독립, 글로벌 시장 약진을 소개하는 기사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뒤늦은 2000년대에 부품·소재 개발에 뛰어 들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많은 성과를 일궈내고 있다. 일부 전자 부품들은 일본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고, 소재의 국산화 성공에 대한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한국 특유의 ‘빨리 빨리’ 문화가 부품·소재 발전에 추진력을 더 하고 있고, 환율 등 외부 환경도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들의 저력을 새삼 느낀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트릴 그날까지 우리가 가야 할 험난한 길이 너무도 멀다. 고부가가치 부품에서는 여전히 기술격차가 상당하고 소재 시장도 일본 기업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엔고의 영향으로 일본산 부품·소재의 가격이 치솟고 있지만, 삼성·LG 등 기업들이 일본 업체들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비싸도 ‘울며 겨자먹기’로 일본에서 부품·소재를 살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우리 IT산업의 현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도쿄(일본)=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