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디스플레이 업계 상생을 통한 위기 극복

[ET단상] 디스플레이 업계 상생을 통한 위기 극복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 5년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춘추시대 말 진나라의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우나라 우공에게 그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간파하고,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라 진언했으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길을 열어 주었고,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언대로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이 얘기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도 대만-중국 간 양안 협력이 본격화되면서 세계 1위 디스플레이 생산국인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상생협력이라는 말 그대로 ‘서로 살기 위해 힘을 합해야’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요즘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 상생협력 활동을 통한 성과가 일부 도출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8월,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일대 사건이라고 할 정도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대-대기업 간 상생협력이 있었다. 그동안 세계 1, 2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던 삼성-LG 간 패널 교차구매 MOU 교환이 바로 그 것이다. 동종 업계에서 대기업 간의 협력사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며, 디스플레이 분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과 LG의 협력사례는 첫 번째 전략 제휴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또 경쟁국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삼성과 LG의 협력분위기는 수직계열화 문제를 심리적으로 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비 교차구매의 실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매사인 삼성과 LG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인식해 장비의 수직계열화 완화를 위해 그동안 양 패널사가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 일부 진전이 있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것이다.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장비 교차구매 방식이 패널업체와 장비업체가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업체로부터 납품받고 있는 품목을 교차구매라는 명목 하에 경쟁 협력사의 제품으로 교체하는 ‘생색내기’ 수준의 추진방식은 자칫 국내 장비업체 간의 과당경쟁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 바람직한 교차구매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품목 중 국내 경쟁협력사의 장비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현재 협회를 구심점으로 삼성-LG 간 장비교차구매 문제를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2009년에는 패널업체의 신규 투자가 미미해 교차구매가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신규투자가 발생하는 2010년에는 의미있는 수준의 장비교차구매가 실현되리라 기대한다. 이처럼 디스플레이 업계의 상생 분위기는 이제 막 조성돼,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업계 간 상생협력에 대한 관심과 교류, 그리고 정부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

 “산속의 오솔길이라도 계속 다니면 길이 되고, 한동안 다니지 않으면 곧 띠풀이 자라 길을 막는다’는 맹자의 말이 있다. 업계의 상생협력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업계 간 정기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대화의 장 마련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의 행정적 지원이 계속돼야 할 것이다.

 김동원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kdw1952@k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