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시청률 조사제, 뜯어고쳐라

[ET단상] 시청률 조사제, 뜯어고쳐라

국내에서 통용되는 지표 중에 서로 다른 두 결과가 발표되고 종종 그 차이가 커서 혼란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TV 시청률이다.

 시청률은 특정 시간 동안 TV를 시청하는 가구나 사람을 백분율로 표시한 것으로, 방송사에서 방송프로그램을 평가하고 편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며, 광고사는 광고전략을 수립하고 광고효과가 어떠했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정책 당국도 매체 간 경쟁 상황을 파악하고 진흥과 규제정책을 수립하는 근거로 활용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다. 시청률이 내가 즐겨보는 주말 드라마의 인기를 알아보는 단순한 호기심 차원이 아니라 공적인 성격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두 개의 민간 조사회사가 서로 다른 시청률 자료를 생산하다 보니 혼란이 생긴다. 게다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 공식적인 검증절차도 없다.

 시청률 자료는 일반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방송사 주요 재원인 광고비와 직결된 자료이므로 정확성이 생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주요국에서는 시청률 자료를 만들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기구와 제도를 일찍부터 정착시켰다. 프랑스는 방송사와 광고주가 출자해 비영리회사(Mediametrie)를 설립해서 시청률 자료를 생산, 검증하고 있다. 영국도 비영리기구(BARB)에서 한 조사회사를 지정해 단일 시청률 자료를 유통시키고 이와 별도로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있다. 미국은 한 개의 민간회사가 시청률 자료를 생산하지만 미디어측정위원회의 인증을 받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 우리가 이런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첫째, 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시청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제정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시행령에는 콘텐츠 동등접근 기준으로 ‘시청률’이 명시돼 있다. 또 헌재의 방송광고독점 헌법불일치 판정에 따라 민영미디어렙이 도입돼 방송광고시장이 경쟁체제로 변하면 광고 단가의 산정 기준인 시청률의 중요성은 커질 전망이다. 신문과 방송 겸영이 시행되면 미디어 다양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시청률이므로 그 신뢰성은 한층 부각될 것이다.

 둘째, 시청률 측정에 대한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노력이 미흡하다. 주요국은 비도시 지역을 포함해 시청률을 조사하고 조사대상인 패널가구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등 품질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대도시 위주로 패널이 구성돼 있고 모집단 반영과 패널 관리에서 국제기준(Global Guideline for TV Audience Measurement)에 미흡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옥외 시청, 시간이동 시청 등 시청형태 변화에 대응한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뉴미디어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 DMB와 IPTV를 포함한 통합 시청률 측정이 필요하다.

 시청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광고자율심의기구’와 같은 전담조직이 필요하다. 일본 니혼TV의 시청률 조사가구 매수사건과 국내 조사회사의 시청률 조작 의혹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장 자율에만 맡겨 놓으면 시청률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청률 검증기구의 필요성은 과거 공청회와 전문가조사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공감한 사안이다. 검증기구 설립을 위한 관련 업계의 자발적인 노력과 함께 관계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3조원이 넘는 방송광고 시장의 기준인 시청률 데이터의 신뢰회복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정용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동향분석실 책임연구원(ycjung@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