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공학·기술 관련 최고 지성그룹인 공학한림원이 2일 국가 과학기술 정책의 일관되고 힘 있는 추진을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연구개발(R&D) 예산 배분 기능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행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사무국을 독립시키고,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밝혔다.
이날 한국공학한림원(회장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조선호텔에서 개최한 정책발표회에서 공학한림원 산하 미래공학기술전략위원회 최영락 위원장(고려대 교수)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국가적 리더십을 줘야 한다”며 “기획재정부가 전담한 R&D 예산 배분권을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전략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종용 공학한림원 회장은 최근 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3개 부처가 공동으로 출범시킨 ‘과학기술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 회장직도 겸한다. 향후 국가 과학기술 기구 역할 재정립과 출연연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의 민간 측 큰 그림을 처음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학한림원은 기초연구를 수행하는 대학으로 쏠린 정부 R&D 지원 예산 구조를 지적하며, 앞으로는 기업과 연계한 산학 연구에 더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대학 평가 시 정부연구보다 산학연구에 가중치를 부여하고, 기업과의 R&D를 교수 평가나 인센티브에 우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교과부의 기초연구 강화 방침과 배치되는 방향이다.
공학한림원은 또 소재 분야 R&D 예산을 지금보다 3배 이상 증액시키는 방안도 제시했다. 부품소재 R&D에 대한 획기적인 정부 투자 확대와 R&D 투자 전체에 대한 OECD 최고 수준의 세제 혜택 부여를 요청했다.
공학한림원은 이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정부 R&D 프로그램의 대대적 쇄신 △강력한 신산학연 협력 체계 구축 △5년 내 다국적기업들이 탐낼 만한 수준의 세계적 공과대학 10개 집중 육성 △기술혁신에 친화적인 인프라 확충 △과학기술 거버넌스와 지원 제도 개혁의 5대 중점 정책 방향을 정부에 제안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찾아올 기회 확보를 위해 기업들이 뛰어야 할 방향도 제시했다. 우리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주력 제품의 고급화·고부가가치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제고 △미래를 책임질 미래주력 제품 창출 △글로벌 수준의 창의적 인재 유치 △글로벌·개방형 기술 혁신 전략 강화의 4대 중점 과제를 주문했다.
윤종용 회장은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정권 교체, 신흥국 기업의 약진, 에너지·자원 경쟁 심화와 기후변화 대응 등 급변하는 세계 현상은 대(大)재편·대(大)경쟁의 시대를 불러왔다”며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기를 우리 경제 질적 고도화의 기회로 활용하려면 반도체, 모바일,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과 같은 기존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신산업과의 융합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형준·이진호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