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만화계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나 ‘요리’가 되고 있다.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필두로 다양한 소재의 음식을 소개하는 일본만화는 물론이고 한국의 대표 요리만화라고 할 수 있는 ‘식객’ 역시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요리만화의 지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리 만화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중에 내가 진짜로 느낄 수 있는 맛은 어느 정도일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수많은 일본만화는 그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편이라 그림으로 우리 미각을 자극하기는 하지만 그 실제 맛을 연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의 대표 요리만화인 ‘식객’도 어떤 점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그 맛을 연상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팔도강산 방방곡곡 숨은 맛집의 진정한 참맛을 그림만으로 상상해 내기에는 내 경험이 일천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와인이나 커피를 소재로 한 만화도 다를 바 없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종류에서 느껴지는 맛은 마트에서 파는 와인이나 인스턴트 믹스 커피만 홀짝이는 혀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심오한 맛의 세계일 것이다.
이렇게 만화 속에서 그려지는 화려한 맛의 향연을 따라가지 못해 지쳐갈 때 만난 만화가 있으니, 바로 ‘키친’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우리네 부엌에서 쉬이 만날 수 있는 맛이 다양한 에피소드와 어우러져 그 맛을 읽는 이로 하여금 한껏 느끼게 한다. 제철 굴, 감자전, 된장찌개, 꼬마 돈까스, 삼치구이, 단팥빵, 유부초밥, 컵라면, 고추 장아찌, 육개장 등 이름만 떠올리면 그 맛이며 향이 느껴지는 요리들이 이 만화의 주요 소재. 이렇게 익숙한 맛들 사이에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가 있지 할 정도로 이야기들이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찌개 중 가장 만들기 쉬우면서 누구나 제일 먼저 시도하는 요리’라는 된장찌개의 맛 속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집간 딸의 마음을 애잔하게 담아낸다. 또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얼떨결에 들어간 장례식장에서 맛본 ‘혀가 얼얼할 정도로 강한’ 육개장의 맛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이야기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준다.
물론 이렇게 감동만 가득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마무리하고 마시는 시원하고 단맛이 가득한 바나나우유의 참맛이나 유부초밥이나 삼치구이 같은 간단한 요리로 애인을 만들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는 연애의 다양한 이야기가 폭넓게 담겨 있다.
더불어 잔잔한 주요 에피소드 사이에 작가 자신의 경험을 곁들인 한 페이지의 짧은 만화를 함께 선보이고 있는데, 이는 메인요리 후에 먹는 달콤한 디저트를 연상하게 한다. 메인요리의 감동이 더 클수록 디저트의 맛이 달콤하듯이 만화 키친은 본편과 더불어 짧은 부록 만화의 조화로움으로 하나의 완벽한 요리를 선보이는 주방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다.
현직 교사로 재직 중이며 평범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는 작가 조주희의 일상에서 엿보는 요리란 바로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의 맛이기 때문에 그 공감의 정도가 더욱더 큰 것 같다. 한번쯤 작가의 키친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떨까. 그곳에서 우리 주방과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만의 요리에 담긴 작은 이야기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 bride100@par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