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여 국내 기업체 임원들의 보수를 공시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처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유사 법안은 폐기됐으나,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앞다퉈 보수산정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실이 대표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지난 19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으며 24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다. 소위원회에서 통과되면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오는 12월 본회의에 상정된다.
개정안은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기업의 임원별 보수를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59조와 동법 시행령 제168조는 사업보고서 기재 사항 중 임원 보수에 대해 해당 사업연도에 임원 모두에게 지급된 보수의 총액만을 기재하도록 했다. 이정희 의원실 측은 “기업 임원들의 보수를 공개하는 법은 이미 영국 등 해외에서 법제화됐다”며 “본회의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대기업은 물론이고 벤처기업 등 사업보고서를 제출하는 2000여개 회사에서 근무하는 임원 개인에 지급한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재계는 과도한 규제라면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임원별 보수 공시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고, 직원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문호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위원은 “미국은 엔론 사태라는 특별한 사고를 계기로 상위 5명의 임원 보수만을 공시한다”며 “임원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한국 기업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은 아직 개정안에 대한 내용 파악이 이뤄지지 않은 분위기다.
2007년 말 기준으로 아시아 13개국을 조사한 결과, 중국, 홍콩, 인도, 싱가포르 등 8개 국가에서 임원 개인별 보수를 공시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9월 G20 금융안정위원회(Financial Stability Board)의 금융기관 보수 산정 체계에 대한 기준안 도입 합의 이후 정부 주도로 상장기업 전체에 대한 임원 보수 공시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김원석기자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