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윤정의 성공파도] (220)어른놀이­-연애

[지윤정의 성공파도] (220)어른놀이­-연애

 아내 말고는 아무도 없는 남자를 ‘한심’한 남자, 애인이 한 명 있는 남자는 ‘양심’적인 남자, 애인이 두 명인 남자는 ‘세심’한 남자, 애인이 세 명 이상인 남자는 ‘열심’히 사는 남자란다. 불륜이 영화 소재만이 아니라 일상의 소일거리가 됐고 혼외 연애가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일상의 자랑거리가 됐다.

 연애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연애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연애하고 있다는 느낌과 연애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애정의 대상보다 감정 그 자체에서 더 쾌감을 느낀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지금의 권태를 벗기 위한 수단일 뿐이고, 상대가 멋진 게 아니라 멋진 상대를 만난 내가 대단한 거다. 상대에 대한 간절함보다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나를 더 사랑하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고 있다는 그 사실을 사랑하는 것이다.

 대단히 외부 의존적인 자기애다. 타인에 의해 나의 존재감을 느끼고 상대가 비로소 나를 사랑해 줘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유아적 사랑이다. 남들 다 하는 연애 한번 해보자며 파트너를 물색 중이거나 누군가와 뜨겁게 연애하고 싶다고 소망하는가. 그렇다면 진정 상대가 필요한 건지, 아니면 연애하고 있다고 느끼고 싶은 건지를 곰곰이 되짚어보자. 자기애의 발로로 시작한 연애는 오래가지 못한다.

 남이 사랑해 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게 먼저다. 스트레스 해소로 시작한 연애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연애해서 두 배로 행복해졌지만 이내 열 배로 더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것을 감수할 용기와 간절함이 없이 커피 같은 기호식품으로 연애를 생각한다면 여러 사람에게 민폐다. 무분별한 연애는 로망이 아니라 노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