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연구실에 열 명 정도가 모여서 무알코올 샴페인 두 병, 생과일 케이크 하나를 놓고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제안한 설계가 높은 기술점수를 받고 요르단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것을 자축하는 파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꼭 아홉 달 전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온갖 의견을 내놓던 장면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당시 아침에 시작한 토론은 저녁 6시를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하루 종일 이야기한 주제는 요르단에 제안할 연구용 원자로의 설계 개념이었다. 요르단이 준 설계 요건이 구체적이었으면 훨씬 쉽게 결론이 날 수 있을 터인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온갖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우리가 만족시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입증됐거나 짧은 시간 안에 입증이 가능한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뜬구름 잡는 아이디어는 안 되고 경험과 상상이 동시에 필요했다. 흑판에 적혀 있던 수많은 개념이 하나씩 정리되면서 흑판에서 지워졌다 되살아났다. ‘수력 구동 제어봉은 왜 안 되지?’ ‘판형 핵연료로 가면 상향 유동은 곤란한데?’ ‘핵쟁이(원자로물리 팀), 이렇게 노심을 구성하면 핵연료 출력 피크가 얼마나 나올까?’ 물 팀(열수력 팀)의 질문에 숫자가 제시됐다. 누군가 제안한 개념이 별로 지지를 받지 못해 언짢아 하는 일도 있었지만, 나중에 이 설계가 어느 개인이 아닌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작품으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자유로웠다. 자유롭게 생각을 말할 수 있되, 모든 주장은 근거가 있었다. 하나하나 개념들이 자유롭기도 했지만 또한 서로 잘 어울려서 전체가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플랜트 수출이 될 요르단 연구로가 성공적으로 운전을 시작하는 날은 더 많은 사람과 함께 성대하게 자축 파티를 열리라. 그리고 얼마나 즐겁게 일했는지 말할 것이다.
오수열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로공학부 책임연구원 syoh@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