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질을 하다 보니 다이어리나 기자수첩에 별별 시시콜콜한 것조차 적는 습관이 생겼다. 손안에 들어올 만한 다이어리를 연간, 월간, 주간, 일간으로 적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무지갯빛 메모지까지 덕지덕지 붙여댄다. 기자생활 내내 들고 다니던 기자수첩은 내가 책상 퇴물이 된 뒤 이해하기 어려운 공상 혹은 꿈이 몇 자 적혀 있을 뿐이다.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어야 할 기자수첩 안에 온통 잡동사니들만 너저분하다.
한때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었지만, 들춰 보니 시시콜콜한 일상이 담겼다. 일기(日記)가 아니라 약속 장소와 주요 업무, 개인 대소사가 가득 적힌 그야말로 1년간의 개인 일지다. 다짐이나 약속은 대부분 공수표로 끝났고, 허겁지겁 약속을 맞추느라 미친 듯 뛰어다니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기쁜 일보다 초초해 했던 일, 서툴렀던 일, 긴장했던 일, 부끄럽던 일이 많다. 건강했던 친구의 죽음도, 기업가의 안타까운 절규도 들어 있다. 2009년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땀내 나며 녹아 있다.
꼼꼼히 들여다보니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다이어리 속 사람들의 3분의 2는 기업인, 3분의 1 정도는 관료였다. 기업인은 대부분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IT 업계나 과학기술계에 대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관료 절반은 현 정부의 정책이 믿을 만하다는, 나머지는 좋지 못한 평가를 내렸다. 2009년에 만난 사람들의 8할 이상은 우울한 소리만 해댔다. 거시경제나 미시경제 지표처럼.
하물며 가족과의 약속조차 즐겁지 못했던 기억이 많다. 찾아보면 즐거운 기억이 있겠지만 이상하게 다이어리 안에서 가족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일찌감치 2009년을 떠나 보내기로 했다. 가족이나 친구, 모든 이들과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나 스스로와의 약속마저 어긴 나에 대한 체벌이다.
작별 인사 ‘안녕’을 불어로 아듀(Adieu)라고 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기약 없는 이별’의 의미도 들어 있단다. ‘또 만나요’라는 뜻을 지닌 ‘오르부아(Au revoir)’라는 단어도 있지만 이른 12월에 2009년과 ‘아듀’를 선택했다. 히딩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마치고 작별할 때 ‘굿바이(Good bye)’ 대신 ‘소 롱(So long)’이라고 인사를 했다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친구와 동료들과 지인들과 송년회도 한참 남았지만, 지나간 해를 다시 못 만다는 뜻에서 ‘아듀’를 외친다.
서둘러 2010년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새로운 1년치 다이어리를 펼치니 무언가 적을 것이 생겼다는 점에서 흥분이 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탐험가 스콧의 남극일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에 기억에 남을 만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한 공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새해에 해야 할 일이나, 꿈조차 아직 없다.
새 다이어리에 반갑다는 의미의 ‘안녕?’을 적었다. 그 다음 공간에 올해처럼 같은 문장을 힘주어 적는다. “나는 긍정의 힘을 믿고 살아가겠습니다.” 평범한 40대 중반의 일년이 꿈꾸며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