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 코리아, 약일까 독일까

아시아 신흥 7개국에 대한 외국인 주식투자의 절반 가까이가 국내 시장에 몰린 것은 일단 우리나라 경제와 증시의 앞날에 좋은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우리 기업들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투자와 생산을 늘릴 수 있는 동력이 그만큼 커진 셈이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밀물처럼 들어온 자금은 실상 그동안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남은 자리를 메운 것에 불과해 착시현상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언제든 다시 일거에 빠져나가면서 국내 금융시장을 흔드는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있다.

◇외국인 순매수 ‘상전벽해’=10일 한국은행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순매수는 과거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라고 할 만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은 지난 4년 간 ‘팔자’로 일관했다. 2005년 41억6천400만 달러 순매도로 전환한 외국인 투자자는 2006년 121억3천900만 달러, 2007년 294억1천700만 달러 등으로 순매도 규모를 키워왔다.

급기야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지난해에는 333억7천700만 달러의 기록적인 순매도를 기록했다.

다른 아시아 신흥국과 비교해도 국내 주식시장의 외국인 순매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이 기간 인도, 대만, 태국 등 비교적 규모가 큰 신흥국의 주식시장은 지난해를 제외하면 외국인들이 순매수 행진을 이어왔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지난해에도 순매수를 기록했다.

외국인의 팔자 공세에 맥을 못 추던 국내 주식시장이 올해 들어 대규모 순매수로 급반전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은 임형준 주식시장팀장은 “국내 기업들이 주가수익비율(PER) 등 수익률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투자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한금융투자 이성권 이코노미스트는 “IT와 자동차 등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알짜 산업을 보유한 덕”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가 두터워진 점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대외 신용도 지표인 5년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말 316bp(1bp=0.01%포인트)에서 지난 8일 91bp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태국은 249bp에서 96bp로, 필리핀은 383bp에서 174bp로, 베트남은 498bp에서 232bp로, 말레이시아는 220bp에서 93bp로 떨어져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의 낙폭이 가장 컸다. 이 수치가 낮을수록 대외 신용도는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해외 투자은행(IB) 등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줄곧 상향 조정한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위기 시 우리 당국과 금융회사들이 보여준 유기적 대응과 안정적인 시스템을 꼽는 사람도 있다.

◇“악몽 재현될라..실익은 글쎄”=하지만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를 마냥 반길 일만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특히,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보이는 외국인의 단기적인 투자 행태를 고려하면 매매차익 또는 환차익이 일정 수준에 올라서거나 국제 금융시장이 지난해처럼 크게 출렁인다면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올해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된 것은 그만큼 외국인 자금 유출로 만들어진 우리 주식시장의 ‘구멍’이 컸기 때문”이라며 “이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우리나라처럼 자본시장이 완벽하게 개방된 곳에서 외국인 자금은 언제든 쉽게 발을 뺄 수 있다”며 “핫머니 성격을 지닌 헤지펀드 자금에 대해서는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결국 ‘단물’은 외국인이 모두 빨아먹고 국내 경제주체들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별로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성권 이코노미스트는 “외국인이 시장을 좌우하고, 국내 기관투자자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시장 수급의 주도권을 외국인에게 빼앗겼다”며 “외국인 자금이 언제까지 계속 유입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최근의 선순환 구조는 쉽게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