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는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국제회의로 불린다. 2012년 종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 협약을 만들어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시키고 이를 통해 지구의 온난화를 저지하겠다는 목표로 각국 정상과 대표단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기 때문이다.
친환경 자동차를 홍보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당연히 세계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자사의 대표 친환경 차들을 내보내 열띤 홍보전에 나섰다. 이번 총회에 공식 후원을 맡은 자동차 회사는 BMW, 다임러, 볼보, 혼다의 4개 업체지만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여러 브랜드가 직간접적으로 자사 제품을 전시하거나 행사용으로 제공해 그야말로 친환경 차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르노는 2011년 시판에 들어갈 전기차의 시제품을 동원했고 프랑스 시트로엥의 소형차를 개조한 전기차와 노르웨이산 전기차 ‘싱크’도 행사장을 누빈다. BMW는 7시리즈에 수소 엔진을 사용한 ‘하이드로젠7’ 10대를, 메르세데스 벤츠는 S클래스 400 하이브리드 12대를 지원했다.
혼다는 하이브리드카인 ‘인사이트’ 10대를, 볼보는 바이오에탄올로 움직이는 S80과 V70을 40대 내놓았다. 혼다와 벤츠는 연료전지차를 준비하기도 했는데,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유럽 메이커들이 하나같이 디젤승용차를 빠뜨리지 않고 함께 선보였다는 점이다.
BMW는 제동에너지 회생기술과 시동 자동정지 기술이 들어간 520d 10대를, 벤츠는 유로6를 만족시키는 E350 블루텍 등 디젤 승용차 18대를 지원했으며, 볼보는 1.6리터로 다운사이징한 디젤엔진+수동변속기 조합의 S80세단 20대를 협찬했다. 기존 디젤 차보다 배출가스를 줄이고 효율을 높인 이른바 ‘클린 디젤’ 차량들이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는 7일과 8일 양일간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이명규 의원 주최로 ‘클린 디젤 글로벌 포럼’이 열렸다. 이 행사는 국내외 연구진과 자동차 업계 및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녹색성장’을 이끌 고효율 자동차로서의 클린 디젤 자동차 발전전략과 정부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으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보쉬코리아가 협찬했고 대한석유협회 등이 후원했다.
주요 자동차회사들에 디젤 관련 핵심기술과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보쉬에서는 유르겐 게어하르트 수석부사장이 나와 디젤의 효율성을 역설했다. 그에 따르면 전기차는 에너지 효율성이 아주 높아 같은 연료로 내연기관보다 2.5배 이상의 거리를 달릴 수 있으며, 따라서 미래의 자동차로 기대를 모을 만하다. 하지만 전기차가 현재 기술로 디젤 승용차의 1회 주유 주행거리를 따라잡으려면 수십톤에 이르는 배터리를 실어야 하는 등, 사실상 기존 자동차들을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20년 정도는 클린 디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최선책이라는 것이다.
디젤(엔진)은 가솔린보다 연비가 30% 좋고 이산화탄소 배출은 25% 적다. 현대적인 클린 디젤 엔진은 고압분사 시스템과 고효율 터보, 후처리 장치 등을 통해 15년 전의 디젤엔진보다 배출가스를 90% 이상씩 줄였고 연비는 15%가 개선됐다. 유르겐 게어하르트 부사장은 앞으로 몇 년 안에 1리터로 33㎞를 달릴 수 있는 소형 디젤 세단이 시판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또한 ㎞당 70g 수준으로 적어져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줄일 수 있게 된다.
오강현 대한석유협회장은 에너지 수급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디젤을 향한 편견을 버려주길 당부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디젤의 48%를 수출하는 반면에 LPG는 61%를 수입하고 있는데, 정책적으로 디젤 소비를 늘려서 이처럼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참석자들은 선진국처럼 클린 디젤차에 세제 감면 혜택을 주기는커녕 환경부담금 제도로 오히려 소비자들의 부담을 높이고 있는 현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소비자들이 실제 구매와 유지 단계에서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 차량인 클린 디젤 차량이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병권기자 bkmin@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