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과 경제연구소는 비슷한 숙명을 타고난 기관이다. 맞추면 본전이고 못 맞추면 제대로 욕을 얻어먹는다.
기상청 직원들은 기상 오보 공포로 언제나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경제연구소 연구원들 역시 경기나 주가 예측이 잘못될까 늘 노심초사한다. 예측 실패는 기관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는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기관들은 매일 ‘예측공포증’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예측 공포증은 평시에 그리 크지 않지만 기상 이변이 잦거나 경제가 흔들릴 때 더욱 커진다.
기상청 직원과 경제연구소 연구원들은 올해 유난히 어려움을 겪은 한해로 기억할 듯 하다. 기상청으로서는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잦아 공포스러운 한해를 보냈다. 몇번의 잘못된 예보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경제연구소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예측 자체가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지난해 말과 연초에 걸쳐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정확히 예측한 곳은 한군데도 없다. 더구나 경제전망을 내놓고 하루밤이 지나면 다시 수정해야 할 정도로 그야말로 ‘굴욕’을 겪었다. 드러내놓고 “상황이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는 곧 기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보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경제연구소의 진정한 가치는 위기 시에 드러난다. 경제위기에 정확한 예측과 대응책을 제시한 기관들은 순식간에 명예와 신뢰를 얻는다. 대부분 세계적인 경제연구소들은 국제 금융위기 등을 통해 그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 경제연구소들도 올해 경제위기를 통해 노하우를 쌓아 글로벌 기관으로 발돋움할 많은 계기를 마련했다. 비난도 많았지만 기관의 지명도를 높이는 자양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경제연구소에도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예측 가능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와 경제연구소들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잇따라 내놓았다. 대부분 올해 대비 4∼5%대 성장을 예상했다. 경제연구소들이 경기회복론에 자신감을 싣고 있는 듯 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같은 예측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전망이다. 일반인도 크게 반길만한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처럼 상황이 너무 잘 맞아 들어가도 경제연구소는 딜레마에 빠진다. 누구라도 예상가능한 상황이 되면 예측으로 기관을 유지하는 경제연구소의 존재 의미가 약해지는 딜레마다. 역으로 생각하면 경제연구소들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드러나는 경제 위기상황을 즐길 수도 있다. 비록 자체적으로 예측 공포증이 커지는 시기이지만 기업 및 국민들의 연구기관에 대한 의존도와 기대치가 높아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내년 경제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도 경제연구소가 내년에는 ‘양치기 소년’의 오명을 벗어던지되 존재 의미를 고민하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경제연구소가 존재 의미를 고민한다는 것은 경제가 순탄하게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권상희 경제과학팀장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