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사장이 18개월 만에 삼성전자 보직을 맡으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15일 이뤄진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이 부사장은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임명됐다. 이에 따라 이 부사장은 앞으로 최지성 사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내부 사업 간 이해관계 조정과 글로벌 경영의 의사 결정을 맡는다. 외형적으로는 최지성 대표이사 사장을 보좌하지만 사실상 경영 전면에 나서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COO 업무는 사실상 사장 역할이라는 관측이다.
이 부사장은 지난 2007년 전무로서 최고고객책임자(CCO) 직책을 맡았으나 지난해 4월 삼성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에 휘말려 CCO 직을 사임하면서 백의종군해 왔다. 사업부 간 업무 조정 같은 일상적인 업무 외에도 CCO를 맡으면서 쌓은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해 글로벌 고객 요구에 대응하도록 할 예정이다.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전략적 제휴·협력을 추진하고 주요 거래처 관리나 미래사업 발굴 업무도 담당하게 된다. 사실상의 대표이사 예행연습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 부사장이 상대할 ‘고객’은 삼성전자와 다양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소니·인텔 같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콘텐츠·소프트웨어 분야 기업을 망라한다.
이 부사장은 또 반도체·정보통신 등 각 사업부문과 해외지사·법인의 경영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에서 휴대폰까지 다양한 사업영역과 기술력을 가진 삼성전자에는 글로벌 기업의 제휴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부사장이 전자 관련 계열사와 업무조정 역할도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갈 것으로 분석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포석인 셈이다.
원톱 체제를 구축한 최지성 사장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다. 삼성 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 경영 구도가 최지성 사장 단독체제로 전환하면서 이 부사장의 보폭도 크게 넓어질 전망이다. 최 사장은 이재용 부사장의 경영 멘토 역할을 해왔다. 최 사장은 1998년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을 때부터 특유의 마케팅 전문가로서 소임을 다해 왔다. 당시 담당 분야는 디스플레이·TV·디지털미디어 등 새롭게 떠오르는 IT 제품이었으며 2001년에는 고전을 면치 못하던 TV사업까지 떠맡았다. 최지성 사장은 이후 2003년 디지털 미디어(DM) 부문을 맡으면서, 특히 보르도TV를 개발해 삼성전자 TV를 세계 1위로 올렸다. TV의 대명사로 불리는 소니 브라비아를 꺾고 세계 일등을 차지한 것이다. 휴대폰도 세계 2위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삼성 측은 “조직이 한 단계 단순화돼 업무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지성 사장의 단독 CEO 체제 등장과 함께 이윤우 부회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떠나 주로 대외업무를 챙기는 것으로 담당 영역이 정리됐다. 이윤우 부회장이 직접 경영 책임에서 물러나는 대신 전사 경영을 책임지는 CEO인 최지성 사장과 사업 전반을 총괄 관리하는 이재용 부사장이 삼성전자를 이끌어가는 구도를 갖춘 것이다. 삼성전자 조직 개편과 이 부사장 체제의 공고화가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계에서는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이 이뤄지면 이 전 회장이 그룹을 전체적으로 지휘하면서 매듭을 짓지 못한 ‘경영권 이양’과 ‘후계자 구도’를 확실히 마무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삼성의 ‘3세 경영 체제’가 굳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병준·김원석 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