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때마다 앨범 정리를 한다. 이때에 대비해 일부러 사진 파일을 모아둔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몹시 불완전한 개인적인 추억의 편린들이다. 어떤 부분은 지워지고 어떤 부분은 과장된다. 그래서 나는 좋을 때만 찍지 않고 나쁠 때도 찍는다. ‘이럴 때도 있었지, 지나고 나면 다 별것도 아닌 것을’이라는 기분을 자아내는 데 사진은 큰 역할을 한다. 슬플 때, 후회될 때, 화날 때, 억울할 때를 찍어두고 1년 뒤 지금이 어떤 느낌으로 남을지를 실험한다. 이 실험의 끝은 언제나 배반하지 않고 어김없이 추억을 선물해준다. 기록은 기억을 북돋우고, 기억은 잘 극복하면 추억이 된다. 단, 기억이 추억으로 승화되려면 ‘극복’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깨짐 없는 깨우침은 없고 고통 없는 성장은 쉽지 않다. 신에게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면 불행을 극복한 뒤의 행복감을 준다. 그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극복해야 행복한 것이다. 영화 ‘에반 올마이티’에 보면 ‘용기를 달라고 한다면 용기를 줄까? 용기를 낼 기회를 줄까? 가정의 화목을 기도하면 화목을 줄까? 화목해질 기회를 줄까?’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기를 낼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용기를 내게 하시며, 화목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화목을 도모하도록 하신다. 기억 창고에서 추억 꾸러미를 꺼내려면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초연해지거나 너그러워져야 한다. 추억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억을 지워버렸거나, 추억은 고사하고 기억하기 싫은 악몽만 남았다면 아직 진행 중이다. 아직 극복해야 할 것이 남아 있고 아직 회복해야 할 것이 남겨져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고 했지만 그냥 지나가지는 않는다. 시간만 때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버틴다고 지나가는 것도 아니다. 치열하게 깨지고 제대로 겪어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