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예산 3000억원을 투입해 내년 3월부터 본격 운영할 ‘교과 교실제’에 공급된 전자칠판이 전자책 콘텐츠의 부재로 인해 ‘그림의 떡’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또 전자파와 밝기 등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없어 학생과 교사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17일 전자칠판 업계와 일선 중·고등학교 정보화 담당 교사들에 따르면 내년 3월 교과 교실제 본시행을 앞두고 전국 256개 중·고등학교에 전자칠판을 필수로 갖추고 있으나 알맹이 격인 디지털 교과서 콘텐츠가 없어 활용도가 낮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교과 교실제’는 대학처럼 중·고등학생이 교과목별로 개설된 교실을 이동하며 수준별 맞춤형 수업을 듣는 선진국형 모델이다. 교실마다 전자칠판·전자교탁 등이 핵심 시스템으로 공급됐다. 각 시도 교육청은 유형에 따라 학교당 3억∼15억원, 총 3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문제는 대다수 학교에서 전자칠판에 띄울 수 있도록 교과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자칠판을 갖춘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서울 C고등학교의 정보화 담당 교사는 “학교 정보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사가 시스템을 잘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인데 교과 교실 전자칠판은 전자화된 e교과서가 지원되지 않아 단순히 필기용 보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당 수백만∼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전자칠판이 전시행정용 시스템에 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별 상황이 천차만별이라는 이유로 교과 교실제 운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학교장 재량에 맡겼으나 e교과서 콘텐츠 제공이나 최소한의 안전 지침 등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견해다.
전자칠판 구축 전문기업인 신영시스템의 신창호 대표는 “하드웨어 제공기업이 교사들이 요청할 경우에 한해 교과서를 일일이 스캔해 e교과서 형태로 만들어주는 수준”이라며 “이마저 입시에 치중하는 교사는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한계를 지적했다.
또 교과 교실제 시행을 계기로 전자칠판이 본격적으로 일선 학교에 대량 공급되기 시작했지만 최소한의 안전 규격조차 없다. 한 전자칠판 업체의 대표는 “전자칠판을 사용하는 교사에 대한 전자파 노출이나 칠판을 보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밝기 규정 등이 없다”며 “기초적인 교육공학적 연구조차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꼬집었다.
이승복 교과부 학교선진화과장은 “교과 교실제 운영 지원은 교과부 본부가 아닌 시도 교육청별로 진행 중”이라며 “학교별로 상황이 달라 본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교과 교실제를 담당한 이건재 장학사는 “현행 법상 국정·검정 교과서는 서책 형태로만 쓸 수 있게 돼 있어 교과서를 완전히 디지털화해 교실 전자칠판이나 전자교탁에서 활용하려면 관련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만큼 교과서 일부 내용을 디지털화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로선 전자칠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별도 교사 연수 등은 계획에 없다”고 밝혔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