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으로 상공회의소에서 가진 대통령 업무 보고.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 정부에서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는 세종시와 IT”라며 “나는 개인적으로 정통부를 폐지한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간, 참석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던 ‘IT’와 ‘정통부’라는 단어가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는 대통령을 보고 안도했다.
집권 초 정보기술(IT)을 홀대해왔던 이명박정부에 IT 우호 기류가 형성됐다. 금기시되던 정통부 폐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론이 대두되는가 하면 IT 육성을 범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하는 등 ‘상전벽해’라는 평가다.
지난 8일 국가 정보화 전략위원회 위촉식. 이명박 대통령은 일일이 민간위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국가 정보화 전략위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정보화는 거대한 변화를 야기하면서 국가 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핵심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며 위원회 활동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은 정정길 대통령 실장의 발언을 인용, “대통령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위원회는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정 총리의 발언도 대통령이 앉은 자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IT가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IT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이 발언에 대해 “서비스 산업이 일자리 창출에 중요하며 IT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라고 설명했다.
현 정부의 IT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훨씬 더 오래전이라는 분석도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12월로 지목하는 이도 있다. 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초 요르단 국왕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이 ‘한국의 원자력 기술보다는 IT를 배우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것이 이후 대통령이 IT를 되돌아보게 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찬사받는 한국의 IT를 당연히 제대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실용정부를 추구하는 현 정부에 맞다”고 덧붙였다.
인식의 변화는 실제로 정책과 예산에 반영됐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189조3000억원(정부 14조1000억원, 민간 175조2000억원)을 투자해 IT융합·SW·주력 IT·방송통신·인터넷 등을 육성하는 IT코리아 5대 전략을 발표했다.
업계 건의를 받아들여 IT특보를 신설하고 9월 초 오해석 교수를 임명했다. 2010년 정보화 예산은 현 정부 들어 처음 플러스로 반전됐다. 2.8% 증액한 2조783억원이다. IT에 대한 진정성 있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변화, 실용정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