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를 정제해 석유 제품을 만드는 정유사들이 2차전지사업에 나섰다. 휘발유를 대신해 전기를 동력원으로 하는 전기자동차가 급부상하고 있는데다, 세계 경제의 저탄소체제 전환에 따라 ‘포스트 석유’ 환경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SK에너지·GS칼텍스·S오일 등 정유사는 올해 들어 2차전지·수소전지 등 기존 전자업체가 중심이던 영역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특히 지난 16일 개최된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협약식에서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전기차 충전소를 구현하는 스마트 트랜스포트 분야에 나란히 참여했다.
정유사들이 기존 주유소를 넘어 전기를 저장하는 2차전지 분야에 관심이 높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이 올해 경제 위기에 따른 세계적인 석유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던 정유사들은 신사업 차원에서 2차전지 시장에 적극 진출했다.
올해 들어 이 분야에서 가장 보폭을 넓힌 곳은 GS칼텍스다. 이 회사는 자회사와 신설법인을 중심으로 에너지 저장장치 등 새로운 에너지원 사업에 뛰어들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GS칼텍스는 신일본석유와 올해부터 2015년까지 총 1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지난 5월 전기이중층커패시터(EDLC)용 탄소 소재 생산법인 ‘파워카본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이로써 내년 4월부터 세계 최대 규모인 연간 300톤의 EDLC용 탄소소재를 본격 양산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2차전지 제조에도 참여 중이다. GS칼텍스는 자회사인 GS나노텍에서 차세대 2차전지인 박막전지를 개발해 초기 시장 진입을 위한 응용제품을 발굴하고 있다. 박막전지는 종이처럼 얇은 형태로 전자제품이 더욱 얇아지고 다양한 모양새를 갖기 위한 필수 제품이다.
또 자회사인 GS퓨엘셀과 공동으로 지난 2007년 수소 스테이션을 개발해 운영하면서 향후 수소자동차가 보편화될 때를 대비하고 있다. 회사 측은 “GS칼텍스는 지속적인 성장기반 확보를 위해 2차전지는 물론이고 신재생에너지에 꾸준히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K에너지도 지난 10월 말 독일 다임러그룹 글로벌하이브리드센터가 추진 중인 미쓰비시 후소의 하이브리드카에 장착될 리튬이온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배터리 기술 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얻은 결과다. 또 SK에너지는 그룹 계열사인 SKC와 SK모바일에너지 등으로부터 축적된 다양한 리튬이온전지 제조 기술력을 확보해 일괄생산 체계를 갖춘다는 방침이다.
S오일도 신재생에너지·2차전지 등 다양한 분야를 검토 대상으로 두고 새로운 사업 모델 발굴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정유기업들이 이처럼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드는 것과 관련, 장치산업의 특성상 대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조용남 전자부품연구원 선임연구원은 “SK나 GS는 에너지기업으로서 그간 다양한 에너지 저장장치에 관심이 높았고 풍부한 자금력을 확보하고 있어 대규모 시설투자로 시장 선점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