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구하기` 큰 틀 합의 못했지만 `절반의 성공`](https://img.etnews.com/photonews/0912/091220071213_439252226_b.jpg)
◆지구 구하지 못한 채 막 내린 코펜하겐
‘코펜하겐에 모인 각국 대표들이 진정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모였던 것일까’
지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전 세계가 주목했던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가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벽을 끝내 허물지 못한 채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간극을 좁히는 일부 진전이 있었지만 모두의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전제하면서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국제기후변화협약을 마련하기란 역시 쉽지 않았다.
총회 의장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코펜하겐 벨라 센터에서 마지막 날까지 밤샘 회의를 진행한 끝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완성된 코펜하겐 협정(Copenhagen Accord)에 ‘유의(take note)’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협정이 일부 국가의 반대로 총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지만 이 협정을 회의의 공식적인 합의 문서로 인정, 법적 효력이 발생하도록 함으로써 합의 내용이 실행에 옮겨지도록 한 것이다. 협정이 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193개 당사국이 모두 찬성해야 가능하다.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미국, 현재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 그리고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5개국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주도로 교토 의정서를 대체할 법적 구속력 있는 전 세계적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내년 말까지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과 일정을 제시한 합의문을 마련했다.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전 세계가 ‘용 쓴 결과물’=합의문에는 △지구평균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하고 △선진국은 내년 1월 말까지 2020년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개도국은 내년 1월 말까지 실행방안을 담은 감축 계획을 제출하고 국내의 자체적 측정·보고·평가(MRV)를 거쳐 2년마다 국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선진국은 2010∼2012년 총 300억달러를 개도국에 긴급 지원하고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목표를 정했으며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내년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당사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수준과 관련,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2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공유 비전에 합의를 이룬 점은 이번 회의의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로 평가된다.
또한 개도국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 역시 총론에 합의한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개도국은 그동안 선진국이 매년 2000억∼3000억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터라 지원 규모를 둘러싸고 이견이 쉽게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지구의 허파인 숲 보전 방안에 합의한 것도 나름의 성과다. 숲을 비롯해 기후변화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토탄 토양 및 습지와 같은 자연지형을 보전하는 개도국에 선진국이 보상해주는 방안에 의견 접근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회의는 끝났고 갈 길은 멀다=이번 회의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양 진영 간 핵심 쟁점 등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내년 열릴 기후 회의에서도 타협점을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합의가 “유례없는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국제적 협력의 새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면서 “오랜 과정을 거쳐 여기에 이르렀지만 앞으로 더 긴 여정이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 대비 16∼23%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반면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1990년 기준으로 감축치를 약 40%로 늘려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최종적인 감축 목표가 정해진다 해도 다음에는 국가별로 배출량을 할당하는 절차가 이어지는데 이를 놓고서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개도국에 대한 선진국의 재정 지원 규모가 정해지기는 했지만 개도국이 너무 적다며 여전히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데다 선진국이나 선발 개도국 중 누가, 얼마만큼의 돈을 낼 것인지 등 분담을 놓고서도 진통이 불가피하다.
개도국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검증 절차를 둘러싼 논란도 예상되는 대목이다. 국제적인 확인 절차에 대해 개도국이 쉽게 수용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그 방식을 놓고도 한바탕 공방이 예상된다.
◇기후회의가 실패한 이유는 ‘무관심’=그렇다면 21세기 최대 규모의 국제협상 테이블을 마련한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성과 없이 끝난 이유는 뭘까.
AP통신은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갈등이나 자국 이기주의 등보다 기후회의 최대의 적으로 ‘무관심’을 꼽았다. 세계 192개국 실무진 대표가 참석하고 120여개국 정상이 한 자리에 모였어도 그들만의 고민일 뿐 일반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기후변화의 위협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AP와 스탠퍼드대학이 공동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탄소배출권 프로그램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이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일반 가정의 에너지세가 월 10달러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응답자들은 먼 나라 얘기인 지구 온난화의 위협보다는 당장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기포드 영국 빅토리아대 심리학 교수는 “기후변화는 언론과 정치인들의 현안일 뿐” 이라며 “일반인 대부분은 기후변화가 북극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먼 곳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나의 일상생활과는 무관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생각을 하는 국민의 표를 먹고 사는 각 국 정상들은 결국 경제적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 이번 협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별기고/이명규 한국기후변화에너지연구소장/코펜하겐 이후 우리가 가야할 길
희망의 호펜하겐(Hopenhgen) 이라고 불릴 만큼 기대를 모았던 이번 당사국 총회에서 결국 개도국과 선진국간 구체적인 감축량 등 합의 달성이 다음 해로 연기된 것은 서로 입장 차이를 줄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줬다.
다만, 교토의정서를 탈퇴할 정도로 온실가스 감축문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었던 미국이 정권교체 이후 적극적으로 당사국총회에 참여한 것, 각국 정상들의 문제 해결에 대한 능동적 노력, 그리고 2010∼2012중 300억 달러 등 개도국에 대한 자금 지원에 합의한 것 등은 매우 획기적이다. 이번 회의가 새로운 체제 마련에 시동을 건 성과 있는 회의였던 것으로 평가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펜하겐회의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가 결렬되면서 기후변화대응을 선도하는 개발도상국으로서 시도한 정부의 자발적 감축 제안이 자칫 산업계에 부담만 주게 된 것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선제 대응은 멀지 않아 우리나라가 감축의무를 부담하게 되거나 온실가스 배출 상품이 국제 교역상 부담을 지게 되는 일이 생기게 되면 현실적인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온실가스 자발적 감축목표 제시는 우리나라의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과 더불어 대외적으로 선진국으로의 이행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이런 불가피한 희생에 따르는 장점으로 국민 개개인의 에너지절약에 대한 인식 제고와 건강한 생활 행태로의 이행 등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산업계가 저탄소 정책을 부담으로만 인식하지 않도록 녹색산업에 대한 명확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 제시한 ‘2012년 당사국 총회 유치, 글로벌 녹색성장 연구소 설립, 자발적 감축 표명’ 등의 후속조치를 추진함으로써 국내적으로는 녹색성장 기조를 유지하고 국제적으로 녹색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
지난해 정부는 향후 60년 국가 비전으로서 저탄소녹색성장 선포 등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고 올해에는 국가 감축목표를 제시했다면 이제는 부문별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하는 등 산업계 등에 정책 방향을 명확히 제시할 때다.
정부는 온실가스 다배출산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감축노력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비용효과적인 설비 교체지원과 관련 기술개발 지원 등에 보다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적극적인 녹색 R&D 육성, 배출권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배출권 거래소 설립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온실가스감축 목표 설정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아우르는 국제회의의 적극적인 역할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 예컨대 에너지 안전보장 및 기후관련 주요 경제국 회의(MEF:Major Economies Meeting) 등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관련 실무회의에서 선진국의 감축수준과 개도국에 대한 R&D 및 적응 지원프로그램을 동시에 포괄하는 대안 등을 내놓고 이를 계속 토의 수정해 나가는 경우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입장은 협상 테이블에서 선진국의 자발적 감축을 촉구하고 개도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촉구하는 균형적 중간자가 돼야겠지만 기후변화문제를 비즈니스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 후세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국별 자율적 감축행동(NAMA:Nationally Appropriate Mitigation Actions) 등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면서 서로 합의점을 찾도록 유도해 나가는 것이 돼야 한다.
※이명규 소장은... 국무총리실 규제총괄 국장과 기후변화대책기획단 부단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한국기후변화에너지연구소를 맡고 있다. 최근에는 녹색성장위원회의 국가온실가스감축 목표 설정에 참여했으며 기후변화·에너지 이슈가 명확하게 부각되고 실천적인 방향으로 추진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