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특집]위기를 극복한 한국 금융

 ‘11.07%->11.83%->12.38%->12.63%’

 작년 말 이후 올 3분기까지 5개 은행지주회사 국제결제은행(BIS) 평균 자기자본비율 추이다. BIS는 8% 이상의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비율이 올해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매 분기 꾸준히 상승했다. 금융감독원측은 이달 초 3분기 BIS비율 발표에서 “은행지주회사들의 적극적인 자본확충 노력과 함께 실적 개선에 힘입어 자본 적정성이 전반적으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은행지주회사들의 슬기로운 경영위기 극복 결과인 셈이다.

 증권사들도 올해 호실적을 거뒀다. 금감원이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 61개 증권사 실적을 평균해 낸 자료에 따르면 증권업계 순이익은 총 1조8586억원으로 작년 동기(8713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는 2008년 회계연도 전체 순이익에 버금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 증권사들의 9월말 기준 자산총액은 190조2000억원으로 작년 동기대비 26% 늘었으며 재무건정성을 나타내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은 557.9%로 19.4%포인트 올랐다.

 이같은 결과는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수장을 포함 임직원들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산물이다. 연초까지 만해도 수장들의 목소리에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신상훈 신한은행장(현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신년사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제로금리 정책과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경기회복의 여정은 예상보다 훨씬 더디고 힘겨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은행·증권사들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위기를 슬기롭게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이는 다시 고객을 위한 적극적인 경영으로 이어졌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금리 인하 결정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힘들지만 ‘고객과 함께’라는 이미지를 계속 갖고 가겠다는 것.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상반기 대출 금리를 내린 직후 “올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건비 등 경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운영을 해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은행도 4월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1%포인트 크게 인하했다. 윤용로 행장은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손대는 것은 매우 힘든 결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새로운 상품 출시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녹색상품들이 있다. 정부의 강력한 녹색산업 육성책에 은행들이 호응을 해준 격으로 주요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은 관련 상품을 연이어 선보였다. 국민은행은 녹색성장기업을 위한 전략상품을 출시했고,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LED산업과 태양광발전산업계를 위한 상품을 선보였다. 기업은행은 ‘녹색성장 지원전담팀’을 구성하고, 녹색성장기업 대출과 예금상품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로 미래에세자산운용의 ‘녹색성장 펀드’ 등 주요 증권사들이 녹색상품을 출시하고 시장 공략에 나섰다.

 하반기 본격화한 은행과 증권사 월급통장 대전도 우리 금융권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소액결제를 계기로 증권사들이 다양한 상품을 출시한 것. 이에 은행들은 이자를 올리고 인터넷뱅킹을 포함, 각종 수수료 면제 혜택 제공에 나섰다.

 고객 맞춤형 금융상품도 은행들의 불황속 적극적인 시장개척 의지다. 경기 침체로 고객들이 신규 상품 가입에 소극적으로 돌아서자, 고객이 직접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융·복합 상품을 개발한 것이다. KB금융그룹은 7월 은행(국민)과 증권(KB투자) 통합계좌서비스를 개시한 데 이어 ‘KB 올스타 엄브렐러 펀드’와 ‘KB 스타매스 카드’를 이용한 맞춤형 서비스를 출시했다. 엄브렐러펀드는 인덱스펀드와 머니마켓펀드(MMF)를 하나로 묶은 후 고객이 자유롭게 펀드 간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해외시장이 좋을 때는 해외펀드로 전환하고 리스크 관리가 필요할 때는 MMF로 바꾸는 형태다. 인터넷 발달로 고객 상품 정보 인지능력이 높아지자, 고객 취향에 맞는 상품을 내놓기 위한 전략이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올해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지난해와 달리 배당을 집행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적자에서 올해 4대 금융지주사들의 연간 순이익은 작년보다 2.21% 늘어난 3조8000억원 안팎으로 증권가는 추정한다.

 올해의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 금융사들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채비다. 경기회복기를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 올해 소극적으로 돌아선 잠재고객들이 내년 회복기에 맞춰 금융사에 눈을 돌릴 것인 만큼 이들 고객 잡기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달 17일 취임한 리차드 힐 스탠다드차타드(SC) 금융지주 대표 및 SC제일은행장은 “앞으로 2년간 한국에 1억달러 추가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는 힐 대표 생각만이 아닐 것이다. 내년은 금융위기 국면에서 벗어나는 해인 만큼 이에 맞는 공격적 사업계획이 필수적이다. 이에 각 금융사들은 내년을 새로운 도약의 해로 꼽고 치열한 영업 경쟁을 펼칠 것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