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에 다닌다는 게 실감납니다.” LG전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말이다. 마케팅 서적에서 봤던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이 내부에서 활발하다는 뜻이다. 이제 영어는 필수, 제2 외국어는 선택이 됐다. 2010년을 앞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인사와 조직 개편에도 ‘전 세계를 내 품 안에 품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재천명됐다.
지난주 단행된 삼성 인사에서는 푸른 눈을 가진 임원 승진자가 세 명이나 나왔다. 해외 현지법인 영업책임자들이 본사 정규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들은 해당 지역 영업을 총괄 지휘하거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현지인들이다. 미국에서 삼성 영상·음향(AV) 제품 매출을 2년 만에 50% 끌어올린 팀 백스터와 존 레비가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했다. 프랑스 휴대폰 시장 1위를 5년째 지켜오는 필립 바틀레 역시 상무가 됐다.
LG전자 역시 조직 안정화 카드를 선택했지만 북미와 중국 등 전략거점 지역본부장에 새 인물을 배치했다. 일종의 세대 교체인 셈이다. 부사장급을 수장으로 임명하면서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는 한편 지휘체계를 더욱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다. 인사를 계기로 앞으로 현지인 채용이 더욱 늘고 현지인에게 과감하게 보상함으로써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끌어올리는 정책도 잇따라 도입할 전망이다.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층은 남용 부회장을 재신임하면서 남용 식 ‘글로벌 마케팅 컴퍼니 변신’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번 인사에서도 남 부회장은 종전 한 명에 불과하던 현지인 법인장 수를 여섯 명으로 늘렸다. 이에 앞서 남 부회장은 더모트 보튼 최고마케팅책임자(CMO), 토머스 린튼 최고구매책임자(CPO) 등 C레벨급 외국인 임원을 여섯 명이나 영입했다. 최현재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자산(asset)을 가볍게 가져 가는 대신 해외 유통망과 공급망관리(SCM) 등에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설비투자를 최소화하면서 이익률을 높이는 전략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인사에서 해외 지역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해외지역총괄을 CEO 직속으로 뒀다. 기존 9개 지역의 지역총괄 중 그동안 중동과 아프리카를 묶어 관할하던 중아총괄에서 아프리카를 독립적인 총괄로 분리, 10개 지역으로 확대했다.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 공격경영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아프리카는 내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전후로 급격한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맞춘 다양한 스포츠 이벤트 등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해외 마케팅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할 전망이다.
아직 가시화하지 않았으나 해외의 기술력 있는 기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앱스토어 등을 통해 해외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는 움직임도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관측됐다. 그동안 선언과 비전의 영역에 더 가까웠던 두 전자 대기업의 글로벌 경영은 내년부터 더욱 현실 속에 뿌리를 내릴 전망이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