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유네스코가 전한 ‘세계 천문의 해(IYA:International Year of Astronomy)’였다. 갈릴레오가 손수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여러 가지 천문 관측을 했던 업적을 기려 ‘천체망원경 400주년’ 기념으로 정한 것이다. 그는 목성 둘레를 도는 네 개의 위성과 토성의 테를 망원경으로 직접 보았으며, ‘토성에는 귀가 달렸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대전의 천문연구원에 있는 세계 천문의 해 한국 조직위원회는 한 해 동안 많은 사업을 벌였다. 7월에는 일식이라는 빅 이벤트도 있었고, 10월에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천체망원경 700여대가 한자리에 모여 기네스북에 오를 기회도 있었지만 비가 와서 취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SF계 시각에서 가장 반가웠던 일은 ‘천문학자와 소설가의 만남’이라는 이름으로 열렸던 창작워크숍이었다. 2월에 소백산 국립천문대에서 작가들과 천문학자들이 2박 3일간 숙식을 함께 하며 활발한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과학에 대한 갖가지 최신 정보들을 쏟아내고, 작가들은 열심히 메모하며 그로부터 새로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고….
이런 장면을 연상하기 쉽지만, 현장에서 지켜본 바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작가들은 사실 천문학자의 생생한 일상과 연구 현장의 모습에 더 호기심을 보였다. 우주과학 정보나 지식은 책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천문학자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등은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과학자에 대해 인류학자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려 한 것은 바로 그들의 소설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실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주과학의 최신 정보도 활발한 토론 주제가 되었고.
아마도 우리나라 문화계에서 사실상 첫 시도라 할 만한 이 뜻 깊은 워크숍은 작품집이 출간되면서 그 결실을 얻었다. 세계 천문의 해 기념 작품집인 ‘백만 광년의 고독’은 워크숍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SF 단편소설 7편을 모아 펴 낸 책이다. 여기에는 현재 한국 SF문학계를 대표하는 젊은 실력파 작가 여서 명과 한국에 살고 있는 캐나다 SF 작가 한 명도 동참했다.
캐나다 작가인 고드 셀라는 비슷한 성격의 행사에 올해 두 번 참여했다. 2월에 소백산천문대 워크숍에 다녀 온 뒤, 여름에 미국에서 열린 ‘론치 패드(Launch Pad)’라는 워크숍에도 참가한 것이다. 론치 패드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후원하며, 12명의 SF작가를 선발해 일주일 간 숙식을 제공하면서 천문학의 각 분야 전문 학자들을 초빙해 매년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서 작가들이 SF 집필 시에 전문적인 지식을 올바르게 구사하고 나아가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프로그램된 것이다.
지난 월요일에는 세계 천문의 해 한국 폐막식이 있었다. 천문의 해를 기념하며 한 해 동안 진행됐던 여러 행사가 마무리되는 자리였던 만큼, 이제 소백산천문대 워크숍과 같은 일이 또 성사될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다. 하지만 워크숍에 참여했던 작가와 천문학자들은 모두 아쉬워하며 이런 만남이 연례화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처럼 우주과학을 선도하는 국가 기관이 대규모로 후원하는 것은 당장 바랄 수 없더라도, 이런 워크숍이나마 정기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의 과학 문화와 창의성, 상상력 발전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관심 있는 기업이나 기관이 나서준다면 참 고맙겠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cosmo@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