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초 디지털 복합기를 만들던 롯데캐논(현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에 고민이 생겼다. 주문량은 자꾸 늘어나는데 공장이 좁아 더 이상 컨베이어 벨트를 늘릴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컨베이어 벨트는 양산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15년 동안 수십억원을 들여 설치한 108m 길이의 컨베이어 벨트를 뜯어냈다. 그리고 ‘셀’ 방식을 도입했다.
셀 방식이란 컨베이어 벨트에 배치된 다수의 생산 인력에 의한 조립이 아니라 근로자 한 명 또는 소수가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하는 방식이다. 일본 캐논이 고안해 낸 이 방식은 조립 공장의 생산성을 크게 높여 세계 주요 기업의 연구과제가 됐다.
롯데캐논은 셀 방식을 도입키로 결정하고 공장 내 움직임을 모두 제품별로 구분했다. 한 사람에게 수십여개 부품을 앞에 놓고 디지털 복합기를 혼자 조립하게 했다. 이전보다 작업은 더 어려워졌지만 생산현장 직원들은 보람을 느꼈다.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한 데 따른 성취감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1997년 대비 1인당 생산성은 24%나 증가했다. 품질도 10배나 좋아지는 성과를 이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셀 방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롯데캐논은 필요한 만큼만 그때 그때 생산하는 ‘동기 생산방식(LSPS)’을 도입했다. 생산관리를 하루 단위로 줄였다. 일단 부품이 들어오면 그날 안에 완제품으로 출하했다. 당일 완제품으로 출하되지 않으면 아예 생산을 하지 않고 부품도 받지 않는다. 당연히 재고 비용을 이전의 70%까지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문제가 완전히 가시진 않았다. 생산부서와 이를 뒷받침할 자재, 검사, 물류 등 지원부서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빚은 것이다. 또 재고가 쌓이면서 혁신의 성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생산방식을 또 한 번 발전시켰다. ‘기종장 제도’였다.
롯데캐논은 생산조직과 관리조직으로 나눠져 있던 조직체계를 ‘조달-생산-검사-물류’를 한꺼번에 맡는 형태로 만들었다. 생산부서와 관리부서 인력이 한 팀을 이루는 소규모 회사처럼 바꾼 것이다. 디지털 복합기·복사기·팩스 등 제품별로 각각 50∼100명으로 구성된 기종장 조직을 만들었다. 각 기종장은 팀장의 책임 아래 부품 발주는 물론이고 원가관리, 제품검사까지 직접 담당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생산성은 높아졌고 재고 부담은 줄었다. 이런 노력으로 롯데캐논의 생산량은 4년 동안 네 배 이상 늘었다. 공장을 증설하지 않고도 생산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롯데캐논의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직원들에게 ‘내가 제품을 만든다’는 점을 자발적으로 느끼게 하고 스스로 ‘소(小) 회사’의 주인이 되게 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동안 작업자들은 담당하는 부분만 잘 하면 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공정이나 제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만큼 성취감이나 책임감 등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셀 생산 방식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에 대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불러일으켜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게 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