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년특집] 변화에 살아남은 장수기업 비결

[2010 신년특집] 변화에 살아남은 장수기업 비결

 1970년 포천(FORTUNE)이 선정한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3분의 1은 10여년이 흐른 1980년대 중반, 매각·분리 또는 합병을 통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기업 규모는 물론 시장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기업들이 2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실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변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평균 수명이 30년 정도에 불과한 기업이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100년을 지속하는 장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동력은 바로 기술력이다. 지도학과 항해·조선술 등 르네상스 시대의 신기술들이 대항해시대를 가능하게 했듯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IT 대항해시대에 나서는 우리 기업들도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지상 과제다. ‘기술을 가진 자가 100년을 지배한다’는 명제는 IT 대항해시대에도 유효하다.

 우리나라 기업 중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업체는 바로 ‘삼성전자’다. 특히 17년연속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D램 기술력은 경쟁 업체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 IT기업으로는 보기 드물게 지속 발전 가능한 수준에까지 도달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기술력은 특히 최근 2년 간 극심했던 치킨게임에서 확실한 비교 우위로 증명됐다.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자는 1992년 전 세계 D램 시장 1위에 등극한 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 D램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기술력에서 나왔다. 삼성전자는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64K D램을 개발했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세계 시장 1위로 도약했다. 특히 1988년 4M D램 개발시 반도체 회로를 밑으로 파는 트렌치(Trench) 방식에서 회로를 쌓아 올리는 스택(Stack)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삼성전자보다 앞서 있던 선진 업체들이 기술 방식을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빠르게 결정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도시바가 트렌치 방식을 채택, 결과적으로 4M D램부터는 삼성전자에 뒤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은 기술이 기업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삼성전자는 지금도 반도체 연구인력을 1만명 이상 유지하며, 기술 주도권 유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기술에 집중하는 기업의 성공 사례로 미국의 ‘퀄컴’도 빠질 수 없다. 이 업체는 생산 활동 없이(팹리스) 기술 라이선스 만으로 수익을 얻는 새로운 비즈니스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다. 2세대 이통통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퀄컴은 자체적으로 휴대폰을 생산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경쟁사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퀄컴은 1999년 휴대폰 제조를 포기하고, 베이스밴드 칩 기술 라이선스에만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는 곧 핵심 기술 개발에만 전력을 다하고, 라이선스 수입에만 집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당시에는 엄청난 도박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퀄컴이 2세대는 물론 3세대 이통 표준까지 선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도록 한 기반이 됐다. 이 같은 기술 집중 전략은 엄청난 수익으로 연결됐다. 지난 2005년 총 매출 57억달러 중 수익은 20억달러로 이익률은 35%에 달했다.

 2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세계 최고 과학·소재기업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듀폰(Dupont)’도 기술력에 집중, 성공적인 변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이다. 듀폰의 성공 비결은 말 그대로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과감한 변신’이였다. 그 변화의 동력은 끊임없는 기술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 2004년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섬유사업을 매각하고 대신 종자회사인 파이어니어를 사들였다. 또 1998년부터 7년 간 무려 60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과 기술 포트폴리오를 바꿔 나갔다. 그 결과 현재 듀폰의 전체 매출 중 34%가 최근 5년 안에 개발된 신기술과 제품에서 나올 정도로 기술 혁신 전략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사업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지속 발전 가능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또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장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 산업 내 경쟁의 룰을 바꾸는 혁신성과 상업성, 범용성을 갖춘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아무리 새로운 기술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한 기술은 쓸모가 없다. 미래 시장 변화와 소비자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만약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없다면 외부 역량을 받아들이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 확보된 기술은 적극적으로 권리(특허권)를 행사하고, 필요할 경우 기술을 공유하면서 경쟁력을 배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