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년특집] "따라하기보다 먼저 해야 승리한다"

[2010 신년특집] "따라하기보다 먼저 해야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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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이후 유럽은 대항해시대를 거쳐 비약적 발전을 한다. 항해왕자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엔히크가 막을 열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페르디난드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 등이 전성기를 이끌었다.

 콜럼버스는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엄청난 금을 싣고 돌아왔다. 마젤란은 세계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향신료를 가득 싣고 왔다.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지나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인도와 직접 무역의 길을 텄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끊임없는 신항로 개척과 신대륙 발견으로 이어졌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항해시대 유럽은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한다. 이는 다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했다. 유럽 중심의 역사, 침략과 약탈의 역사라는 비판도 있지만 대항해시대는 세 가지 관점에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발상의 전환=대항해시대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콜럼버스다. 그는 지구가 둥글고 그래서 바다의 끝에 낭떠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당시로서는 인정할 수 없던 사실이다. 심지어 그는 교회로부터 고발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을 뒤엎은 콜럼버스의 혁신적인 발상은 신대륙 발견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돌아온다. 콜럼버스의 성공은 큰 반향을 불러왔고, 뒤를 이어 유럽의 많은 항해사와 탐험가가 경쟁적으로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났다. 콜럼버스의 작은 생각의 변화가 유럽대륙 전체의 발전을 이끌어온 것이다.

 발상의 전환과 관련한 콜럼버스의 또 다른 일화 중 하나는 유명한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에게 부와 명예가 돌아가자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서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워보라고 했고, 아무도 세우지 못했다. 그러자 콜럼버스가 달걀을 뺏어 탁자에 달걀 한쪽 끝을 깨서 세웠다. 그는 “달걀 한쪽 끝을 깨서 세운 것을 보고 따라하기는 쉬워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며 최초의 신대륙 발견과 신항로 개척의 의미를 강조했다.

 ◇과감한 실행=대항해시대의 또 다른 키워드는 ‘과감한 실행’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과감한 실행으로 완성된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때 진정한 혁신이 된다.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을 했더라도 이를 실제로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엔히크, 콜럼버스, 가마, 마젤란으로 이어지는 실행가들이 있었기에 대항해시대가 전 유럽으로 퍼질 수 있었다.

 대항해시대를 시작한 사람으로 불리는 엔히크 왕자는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가면 이슬람 세력을 넘어 새로운 세계가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이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프리카 항로 개척에 나섰다. 그는 아프리카 남쪽 끝의 해안선이 다시 동쪽으로 꺾여 있다는 보고까지 듣고 사망했지만, 그의 노력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로 가는 디딤돌이 됐다.

 엔히크 왕자는 이러한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넓은 바다에서 항해할 수 있는 선박 제조기술을 개발하고, 해도를 만들었다. 대항해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능숙한 선원들을 육성했다. 엔히크의 이러한 리더십은 대항해시대를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콜럼버스도 좌절을 겪었다. 그가 대서양 탐험을 제안했지만, 주앙 2세에 의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지원자를 찾아 나선다. 그는 포르투칼이 아닌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지원을 얻어내 탐험을 성사시켰다.

 마젤란의 세계일주도 쉽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항해 계획을 말했다가는 선원들이 동참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 행선지를 알리지 않는 무리수를 뒀다. 이들 모두 자신의 계획에 확고한 믿음을 가졌고, 이를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전폭적 지원=대항해시대를 이끈 탐험가들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콜럼버스에게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 마젤란에게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1세, 바스코 다 가마에게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가 그들이었다. 이들은 대항해시대에 나서는 개척자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겼다. 개척자에게는 엄청난 포상도 이어졌다. 이러한 신뢰와 지원·보상이 대항해시대를 이끌었고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자벨 여왕은 콜럼버스를 해군 제독에 임명했으며, 그가 발견하는 대륙의 10%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또 선박 2척과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은 면죄해 준다는 조건으로 승무원 모집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마젤란도 에스파냐 왕실의 지원으로 5척의 배와 270명의 선원으로 이뤄진 함대를 꾸릴 수 있었고, 바스코 다 가마도 왕실의 혈통이 아님에도 백작의 작위를 받는 파격적 대우를 받았다.

 정부라는 든든한 후원자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대항해시대 탐험가들의 혁신적인 생각도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