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신년특집] 대항해 시대 기술 변화](https://img.etnews.com/photonews/0912/091231011249_1328202305_b.jpg)
대항해시대의 기술 변화상은 조선술과 항해술의 발달로 요약된다. 르네상스 때부터 축적된 천문학, 나침반, 인본주의 등의 학문 발전을 토대로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을 찾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진다.
14∼15세기에는 범선 건조기술의 발전으로 이미 야간 항해 및 원양 항해가 가능해진 시기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시작됐던 15세기 초까지도 유럽인들은 지중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족한 항해술과 미숙한 천문학도 문제였지만 미지의 항로에 선원들이 품은 공포가 가장 컸다.
유럽의 원정함대는 육지가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항해했다. 카라벨선은 선창이 있어 꽤 많은 식량을 실을 수 있었고 삼각돛을 달아 역풍이 불 때도 항해할 수 있었지만 적재량에 한계가 있어 멀리 나가진 못했다.
그러나 유럽인들의 동방세계에 대한 환상은 나침반을 활용한 본격 원양 항해로 이어졌다. 유럽인들은 나침반 및 이슬람권에서 들여온 다양한 천체 관측기구를 활용해 대양에서도 자기 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15세기에는 해적선을 소탕하기 위한 총포기술이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무기의 발달로 해적 퇴치가 가능해졌고, 새로운 영토를 찾기 위한 장거리 전쟁이 가능해졌다. 유럽인들의 원정함대는 더 커지고 성능도 개선돼 잇따라 원양 항해에 성공하며 대항해시대를 열어간다.
항해술의 핵심인 지도제작술이 발전한 시기도 이 때다. 15세기 말부터 쓰인 천체관측과 위도 촉점 기술은 보다 사실적인 지도 작성에 큰 도움이 됐다. 16세기 포르투갈의 지도제작술은 수효와 품질 면에서 독보적이었다. 경도 측정기술이 만들어져 육지가 정밀하게 표시된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지구물리학이나 천문학 등 관련 학문도 따라서 발전했다. 대서양 연안의 항해는 경험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대양을 항해하려면 그 이상의 지식이 필요했다. 대서양은 바람이 심했고 격류가 흐르며 기후차가 컸기 때문에 12세기에 전해진 나침반이나 해양지도, 항해용 계산표 등으로는 부족했다.
이에 항해사들은 원양에서 매일 선박의 위치를 잡기 위해 천문관측의, 고도를 측정하는 도구인 사분의 등으로 하늘을 관찰하고 별들의 위치를 계산했다. 이는 지구물리학과 천문학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기술과 학문의 발전이 동시에 이뤄진 셈이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