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80나노(nm) 공정을 개발하던 하이닉스 선행개발팀에 비상이 걸렸다. 신공정에 쓰기로 한 일본 회사의 ArF 포토레지스트(감광물질)에서 패턴 결함이 발견된 것이다. 포토레지스트란 웨이퍼 표면에 회로를 그릴 때 쓰이는 필수 재료.
개발팀은 공정 조건을 바꿔보고 제품을 교체하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난관에 부딪혀 있던 그때 다소 위험한 제안이 나왔다. 한 연구원이 동진쎄미켐의 포토레지스트를 시험해 보자고 한 것이다. 당시 동진은 하이닉스와 공동 개발을 진행 중이긴 했지만 80나노가 아닌 다른 공정이었고 또 샘플 테스트 상태여서 위험한 시도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진의 제품으로 평가한 결과, 개발팀을 괴롭히던 패턴 결함이 사라졌다.
10년 넘게 이어진 하이닉스와 동진쎄미켐의 상생협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사는 지난 1998년부터 국산화가 극히 저조했던 ArF 포토레지스트 분야서 협력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하이닉스는 동진쎄미켐과의 협력으로 지난 3년간 90억원이 넘는 원가절감 효과를, 동진쎄미켐은 하이닉스에 420억원 규모의 재료를 공급했다.
하이닉스는 보유 장비로 동진쎄미켐 제품 테스트를 지원했다. 재료 개발을 위해서는 반도체 공정 장비가 필수인 데 소재 업체가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진쎄미켐은 이에 호응, 하이닉스가 개발한 반도체 재료기술을 다듬어 제품화를 촉진했다.
그 결과 동진은 2002년 시스템 반도체용 ArF 포토레지스트를 개발, 세계적 반도체 업체인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공급하는 성과를 냈으며 2005년에는 메모리용 포토레지스트도 양산에 성공하며 외산 제품들을 밀어내고 하이닉스의 양산 공정에 기본 재료로 채택됐다.
이같은 협력은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동진쎄미켐은 첨단 재료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2008년 25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통해 가장 고가인 노광 장비를 비롯한 반도체 공정 장비를 갖춰 연구개발 인프라를 한층 높였다. 동진쎄미켐의 윤희구 부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하이닉스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큰 모멘텀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양사는 현재 첨단 재료인 ArF 이머전 코팅 재료 분야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차세대 기술 중 하나로 기대되는 극자외선(EUV)용 재료도 공동 개발 중에 있어 향후 국산 재료의 활용률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