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CIO - 오세일 신한은행 전무

 IT조직 혁신을 위한 진법(陣法)

 

오세일 신한은행 전무

신한은행은 ‘기술역량의 셰어드서비스화’와 ‘선제적 개발역량 강화’를 두 축으로 조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는 2003년까지 정보시스템 부장으로 재직하고 이후 6년여를 영업현장에서 고객과 부대끼다가 지난해 봄 CIO로 다시 IT로 돌아왔다. CIO로서 업무보고를 받은 첫 느낌은 시스템이 확 달라졌고 사람이 꽤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이 신한·조흥은행의 합병이 이뤄졌고 양행의 통합 차세대 프로젝트를 완료하였으니 당연히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 형태나 운영방식에는 그다지 큰 차이는 없었다. 안 바꾼 것일까? 못 바꾼 것일까? 바꿀 필요는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한동안 품고 있었다.

바깥의 컨설턴트들은 셰어드서비스센터니, 전략코스트센터(Strategic Cost Center)니, 오프쇼어 아웃소싱이니 하는 조직 관련 키워드를 많이 얘기하였다. 예전에도 들었던 개념이긴 했으나 생경한 느낌이 상당부분 가시고 일반화가 된 듯한 어조였다. 그렇다면 그동안 내부 검토도 해보긴 했을 텐데 아니라고 결론지은 것일까? 여러가지 비교해보면 지금 상태도 꽤 괜찮은 조직인 듯 싶은데 이대로 유지하는 게 맞는 걸까?

2009년 한해는 그러한 고심 가운데 앞으로의 조직운영 모델을 재구성했고 이제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다. 돌이켜보면, 조직운영에 정답은 없다. 조직운영은 마치 병사를 움직이는 진법과 같아서 이순신 장군이 썼다는 학익진이 최상의 진법도 아니요, 제갈공명이 썼다는 팔괘진이 최상의 진법도 아니다. 형(形)과 세(勢)에 따라 적합한 진법이 있는 것이요, 또 진법에 따라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질 때에야 비로소 진법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고심 가운데 당행 IT를 둘러싼 다섯가지 정도의 형세가 체감적으로 중요하게 다가왔다. 첫째는 기술의 폭이 넓어지고 세분화되면서 이를 다 이해하고 따라가는 게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예전엔 코볼(COBOL) 알고 프로그램 좀 짜봤으면 이것저것 대부분 할 수 있었는데 반해 요즘은 뭐 하나를 해도 이건 여기, 저건 저기 여러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상의해 봐야만 한다. 세분화되어 조각난 전문성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외부 인력도 활용은 하지만 다양한 기술요소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인력 규모가 클수록 좋다.

둘째는 IT와 비즈니스의 의사소통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수작업의 자동화가 핵심이었던 과거 IT는 현업이 뭔가 얘기하면 이해하기 쉽고 명확했지만, 기본적인 자동화를 넘어 더욱 고도화가 필요한 현재는 현업이 얘기하는 내용도 복잡, 전문적인 것이 되고 IT도 세분화된 기술요소에 천착하다 보니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얘기하는 듯 공통의 이해에 이르는 데 긴 시간이 걸리거나 때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셋째는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 보다 ‘무엇을’이 더욱 중요하고 어려운 숙제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현업에서 필요한 것이 있고 IT는 어떻게 그것을 제공해줄 것인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점차 현업은 뭔가 더 있었으면 좋겠으나 그게 뭔지를 명확하게 요청하기 어려워지고, IT는 요건이 안나오니 어떡하냐는 변명과 함께 선제적으로 뭔가를 도출하기도 어려운 형세라 할 수 있겠다.

넷째는 시장에서의 IT인력 수급 변화이다. 물론 특화된 전문인력은 항상 부족하기 마련이겠지만 과거에 비해 전반적인 시장의 IT인력 저변이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기술이 아닌 은행업무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은 강의실이나 외부가 아닌 은행 내에서 육성될 수밖에 없겠다는 점이다. MBA 학위나 자격증이 도움은 되겠지만 직접적인 업무 노하우나 흔히 말하는 ‘짬밥’에서 오는 구체적인 업무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러한 형세 판단 하에서 앞서 언급한 조직혁신의 두 축을 진법으로 설정하였고 가장 기술역량이 집중되는 분야인 인프라 운영을 그룹 차원에서 셰어드서비스센터로 재편성하고 2009년을 마무리 지었다. 이는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를 통한 비용절감 취지와 함께 통합된 인력 규모를 바탕으로 보다 다양한 기술 전문성 육성의 목적도 이루고자 함이다. 타행 또는 기업체에서도 셰어드서비스센터를 적용한 바 있지만 그 범위나 인력의 전환에 있어 신한은행은 독특한 방식으로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2010년부터는 진법의 또 한 축인 선제적 개발역량 강화에 착수하여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개발조직은 세분화된 업무별로 분석, 설계에서 프로그래밍, 테스트까지 모든 공정을 동일한 인력이 담당하는 것이 기본구조였다. 업무별 사일로 형태라고 봐야 할까. 그러한 방식에서 나름대로의 효율성도 컸지만 숲을 보고 개선과 혁신을 선제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좁은 범위의 부분 최적화(local optimization)에 치중하게 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새로 취임한 이백순 신한은행 행장은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보다 스마트하게 하여 노동이 아닌 생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소명을 IT에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운영방식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2010년엔 개발업무의 공정을 분리하고 별도의 BA(Business Analyst) 역할을 설정하여 현업 업무 전문성을 기반으로 선제적 개발역량이 강화되도록 할 계획이다. 이들이 IT와 현업간의 자연스레 벌어지는 거리를 팽팽히 당겨주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무엇’을 발굴해 설계하도록 구체적인 기준과 육성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취지대로만 돌아간다면 BA는 현업도 IT도 아닌 비즈니스와 기술의 중간자가 되어 벌어지는 둘 사이의 갭을 메우고 일반 현업이나 IT인력보다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개선을 선도해 갈 것이다. BA가 업계에서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근본취지를 제대로 살리자면 타사의 사례를 거울삼아 신한 고유의 역할 모델을 설정할 것이다.

새로운 일하는 체계와 역할모델이 정착하고 전문인력이 육성되기에는 시간도 장시간 소요될 것이고 조직 구성원의 경력관리에 대한 영향도 크므로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과의 허심탄회한 의견수렴과 발전적 대안 모색을 통해 진법을 완성해 가고자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병사들이 진(陣)의 의미를 알고 일사불란하게 따라야만 진법이 제대로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ohseil@shin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