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녹색성장을 위한 차세대 먹거리 마련 차원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중점 녹색기술 선정이 부처 간 업무 조율이 안 돼 해를 넘겼다.
연쇄 반응으로 2차전지 경쟁력 강화 방안 같은 준비된 정책조차 사장될 위기에 놓였다. 갈피를 못 잡는 정책 당국에 대한 산업계의 회의감도 덩달아 커졌다.
3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범정부 차원에서 지난 연말 발표하기로 했던 녹색 핵심기술 선정이 지식경제부·녹색성장위원회와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환경부 등이 제각각 손발을 맞추지 못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정부는 당초 저탄소 녹색성장의 핵심 요소로서 환경 지속성과 경제 성장을 함께 지원한다는 취지 하에 범부처 차원에서 지난해 1월 ‘녹색기술 연구개발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7월에 핵심 원천기술 중심의 27대 중점 녹색기술을 도출, 기술개발에서 상용화까지의 전 주기를 체계적으로 추진한다는 실행전략을 수립해 연말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7개 기술 선정 부처 간 관련회의는 그동안 단 한 차례만 있었을 뿐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해 해를 넘겼다. 예산계획조차 세우지 못했다.
이는 미국·일본 등 경쟁 국가가 앞다퉈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에 나선 것과 대조된다. 미국은 지난해 초 이미 태양광발전·바이오에탄올·2차전지 등에 10년간 1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일본도 지난 2008년 5월 에너지 혁신기술 계획에 따라 21개 탄소 저감 기술 계획을 발표했다.
예산을 담당한 기획재정부 측은 “지식경제부와 교육과학기술부·환경부·국토해양부 등 여러 부처에서 핵심기술 선정에 이견이 커 해를 넘겼다”며 “조만간 장관 재가를 거쳐 추가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지경부는 산업기술 경쟁력이 높은 분야를 우선으로, 교과부는 원천기술 중심의 사업을, 국토부는 신재생에너지 등의 사업 주체로서 입장을 내세우며 이견을 보였다. 여기에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2차전지·신재생에너지 분야 등을 각 부처가 핵심사업으로 내세우며 자신의 영역에 넣으려는 것도 논의를 진전하지 못한 이유로 분석된다.
특히 2차전지 분야가 지지부진하다. 지경부는 당초 2차전지 분야를 글로벌 시장에서 부각시켜 제2의 반도체·LCD로 육성하기 위한 별도의 민관 합동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교과부·환경부·녹색위원회·재정부 등이 각각 2차전지 관련 정책을 별도 추진하거나 녹색 핵심기술에 포함시키면서 지경부의 관련 정책은 완전히 멈췄다. 즉 핵심사업을 자기 소관으로 만들겠다는 부처 간 이기주의가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2차전지 육성 계획은 정부와 산업계·학계 등이 함께 모여 시급한 글로벌 경쟁에서 2차전지를 세계 1위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세부방안을 도출한 것인데 정책 혼선으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며 “부처 간 조율로 업무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