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월드인사이드-디지털 시대 패권 다툼

 디지털 시대 콘텐츠 유통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패권 다툼이 시작됐다. 콘텐츠를 어떤 기기에서든 재생할 수 있게 할 서비스를 준비하는 두 진영이 한판 대결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VHS 대 베타맥스’ ‘블루레이 대 HD DVD’ 등 과거 벌어졌던 포맷 전쟁에 이은 ‘최대 기술 전투’라고 평가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TV, PC, 휴대형 기기 등에 어떻게 유통할 것인지가 최대 이슈가 됐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할리우드의 5개 메이저 영화사와 마이크로소프트(MS), 컴캐스트, 베스트 바이 등 각계 강자들의 연합체인 DECE(Digital Entertainment Content Ecosystem)와 월트디즈니 진영이 맞대결을 펼칠 전망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기술은 콘텐츠를 한 번 다운로드해 언제, 어디, 어느 기기에서나 재생할 수 있는 서비스다. 그동안 PC에 내려받아 보던 영화를 다른 매체에서 보려면 DVD 등에 옮겨 담거나 인코딩을 해야 했지만,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콘텐츠를 원격 서버에 저장해 놓았다가 휴대폰, TV 등 어느 매체에서나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DECE는 공통 디지털 표준을 통한 자유로운 콘텐츠 유통을 지향한다. 일명 ‘라이트 로커(rights locker)’라고 불리는 시스템을 활용해 온라인에 저장했다가 DECE의 공통 디지털 표준과 호환되는 기기에서 재생해 보면 된다. 1년 6개월 전에 결성된 DECE에는 워너브라더스, NBC유니버셜, 소니, 파라마운트, 폭스 등 6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중 월트디즈니를 제외한 5개사가 참여했고 MS, 시스코, 컴캐스트, 인텔, 베스트 바이도 멤버다.

 DECE의 비전에 맞서고 있는 것이 바로 월트디즈니. 월트디즈니는 ‘키체스트(Keychest)‘ 기술을 통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켈리 서머스 월트디즈니 디지털 유통 부사장은 “DECE는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려고 하지만 키체스트는 포맷이 아니다”라며 “키체스트는 서로 다른 플랫폼이 소통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약간 다른 방식을 채택했지만 두 진영의 공통 목표는 디지털 콘텐츠 판매를 늘려 하락하는 DVD 판매를 만회하려는 것이다.

 각 진영은 공공연하게 라이벌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미치 싱어 DECE 대표는 “디지털 시장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고 계속해서 변화할 것”이라며 “어느 한 기업이 단독으로 디지털 시장의 미래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디즈니를 겨냥해 말했다. 이에 대해 월트디즈니 측은 키체스트 기술이 DECE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DECE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DECE에는 삼성, 노키아, 모토로라, 넷플릭스, 테스코 등 21개 기업이 새로 합류했다. 월트디즈니가 애플과 연대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크린 다이제스트의 새러 아멜 애널리스트는 “키체스트와 DECE의 맞대결은 디지털 시대를 결정짓는 포맷 전쟁”이라며 “이것은 디지털 시대의 다음 15∼20년을 지배할 승자를 가리는 전투”라고 평가했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