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찾아오는 백호랑이 해라는 경인년이 시작됐다. 특별한 해라서 그런 것일까. 하늘이 시샘이나 한듯 폭설이 내려 거리를 오가는 것이 힘들다. 뉴스 등에서는 폭설의 피해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외출을 자제하는 것이라고 하니, 한겨울 방안에서 놀거리가 필요한 적절한 시기다. 이런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뜨끈한 아랫목과 여가 시간을 함께해줄 만화책일 터. 신년이라서 새해의 소망과 다짐을 되새기기기에 바쁘겠지만 잠시 짬을 내 순정만화의 대가들이 새롭게 발표한 신작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오프라인 월간 만화잡지에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가장 먼저 신작을 선보인 강경옥 작가의 ‘설희’를 보자. ‘별빛속에’ ‘17세의 나레이션’ ‘두사람이다’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사이의 관계성에 늘 주목하고, 그 관계를 섬세한 감성으로 풀어내는데 뛰어난 강경옥은 ‘설희’에서 그동안 단편들에서 종종 다루어온 ‘전생’이라는 소재를 장편으로 다루고 있다. 비밀을 지닌 한 소녀가 거액의 상속녀가 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산을 둘러싼 음모, 전생의 인연에서 비롯되는 미스터리 등 허를 찌르는 구성과 감각적인 대사,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판타지와 SF, 로맨스 등 모든 장르 만화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단행본으로는 4권까지 나와 있으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다음으로 관심을 가져볼 작품은 ‘풀하우스’ 원수연 작가의 신작이다. 만화뿐만 아니라 정지훈(비), 송혜교 주연으로 드라마화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풀하우스’의 작가 원수연이 웹툰형식의 신작으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작품명은 ‘매리는 외박 중’. 다른 웹툰 작품과는 다르게 원고는 일반 출판만화 방식을 통해 작업을 진행했으나 웹툰 형식으로 독자들을 만날 때는 웹툰의 문법에 맞게 재편집해 제공하고 있어, 웹툰과 단행본 양쪽 모두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고집쟁이 철벽녀와 거칠고 매력적인 록커의 연애담을 톡톡 튀는 발랄함으로 그려낸 ‘매리는 외박 중’ 속에는 달콤한 연애 이야기는 물론이고 연애 와중에 생겨나는 애틋하고 아련한 감정에 대한 단상들이 가득하다. 웹툰을 통해서건 현재 2권까지 나와 있는 단행본을 통해서든 꼭 한번 만나보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신작을 선보인 작가는 ‘불새의 늪’ ‘레드문’ ‘우리는 길 잃은 작은새를 보았다’ 등 수많은 명작목록을 지닌 작가 황미나다. 젊은 시절부터 치매 걸린 엄마를 돌보느라 청춘을 날리고 갑자기 마흔 살에 접어든 주인공 영숙에게 찾아온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순정만화에서는 익숙지 않은 온라인게임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웹툰과 올컬러 만화라는 새로운 도전을 한 작가의 새로운 도전을 맛보는 재미가 살아 있다. 비록 만화를 연재하는 형태는 달라졌지만 수많은 작품에서 이야기 내공을 쌓아온 작가의 숨결을 한 컷, 한 컷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경옥, 원수연, 황미나. 작가들의 이름만으로도 그 무게감이 진하게 전해져 오는 작품들을 보며 눈 내리는 겨울밤을 보내길 바란다. 단순한 재미뿐만 아니라 오랜 작품 활동으로 연륜을 쌓은 작가들이 세상에 전하고자는 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보고 듣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 bride100@parn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