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문서 ‘혁신’으로 가려면

 최근 많은 기업들이 문서 중앙화에 기반을 둔 문서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정보화프로젝트와 달리 문서혁신 프로젝트의 공통점은 경영진의 의지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제조 현장에 가면 너트 하나, 볼트 하나도 관리하는데 핵심 기술을 담고 있는 문서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는 게 말이 되냐”고 호통친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LG디스플레이도 기업 지식의 축적을 통한 권영수 사장의 적극적 지원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신 사례를 접한 남용 LG전자 대표도 직원들에게 문서혁신 구현방안을 고민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LG전자의 임원진들이 포스코와 LG디스플레이 등 앞서 문서혁신을 추진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실제 문서혁신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완수한 많은 기업들은 “이번 프로젝트만큼 대표가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젝트 과정에서 CEO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이렇듯 기술 유출을 차단하고, 지식을 축적해 재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문서 중앙화를 동반하는 현재의 문서관리 프로젝트는 특히 경영진들의 의지가 높다.

그러나 문제는 프로젝트 이후 시스템을 가동하고 활용할 시기에 왔을 때다. 이 시기가 되면 CEO의 역할은 ‘유지’에 머무른다. 문서를 활용하는 모든 직원이 관여된 만큼 실제 사용자의 변화 의지 여부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쥐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한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실제 실무진들은 수동적으로 참여해 혁신의 의지를 동반하고 있지 않았다. “왜 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기술 유출의 주범은 아니지 않는가”라며 초창기 문서 중앙화를 반대했다는 포스코 한 직원의 일화가 이를 잘 대변한다. 최근 기자가 만난 한 문서관리 시스템 업체 담당자도 “현재 많은 기업들의 경우 경영진의 의지는 높으나 실무진의 반대로 프로젝트에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반대를 무릅쓰고 시행한 문서 중앙화가 강제성을 띤 일방향 관리에 머물 경우 우려는 현실이 된다. 모인 문서를 활용하는 체제와 직원들의 의식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직원들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제한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문서 중앙화에서 문서 혁신으로 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직원과 중간관리자들의 능동적 변화 의지다. 일례로, 겉보기에 화려한 보고서로 포장하던 시대에서 데이터를 중심으로 기업 구성원이 소통하는 환경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인식을 새로이 해야 한다.

기존에는 보고 순간을 잘 넘기기 위해 그럴 듯한 말을 만들고 색깔 요란한 보고서를 꾸몄다면, 이젠 과정부터 노출돼 있어 결과를 위해 포장할 필요가 없어진다. 보고 문화와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책임자도 결과를 보고받는 사람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재를 매 단계 승인해온 사람들은 모두 함께 책임자가 된다. 문서의 저장 위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문화’가 바뀌는 데 대한 공감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