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량용 영상 블랙박스로 인한 사생활 침해를 방지할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사고 영상을 녹화하는 차량용 영상 블랙박스는 사고 수습 및 예방에 효과가 커서 전국 택시 4만여대가 도입했다. 새해도 시장 수요가 두 배 이상 급성장할 영상 블랙박스는 차량 전방만 촬영하는 1채널 기종과 차량 내부의 동영상, 음성도 기록하는 다채널 기종으로 양분된다. 택시업계는 사고나 범죄 발생시 차량 내외부 상황을 동시에 녹화하는 다채널 블랙박스를 더 선호한다. 블랙박스의 성능 향상에 따라서 수 십초 분량의 사고영상 외에 하루종일 동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고급기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즉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택시 안에 CCTV카메라가 설치되는 셈이다.
버스와 달리 택시는 승객과 카메라 위치가 워낙 가까워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택시업계에 보급된 블랙박스의 영상기록에 대한 정부의 관리지침, 법적근거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택시 안에서 촬영된 영상파일이 유출되는 상황은 쉽게 발생할 수 있다. 유명 연예인이 택시 안에서 나눈 사적 대화나 연예행각이 인터넷을 떠돌면서 화제거리가 되거나 협박을 받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 제조업계는 지난해 초부터 블랙박스의 사생활 침해를 억제할 민간 기술표준 제정작업을 시도했지만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블랙박스 녹화영상이 함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암호화 기술을 적용할 경우, 제품의 원가상승과 개인소비자 불만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조우텍을 비롯한 다채널 블랙박스 제조업체 대부분은 표준안 제정작업에 참여 않고 각자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기술표준원은 다음달부터 차량용 영상 블랙박스의 기술표준 연구회를 만들고 내년까지 KS규격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의 KS규격에도 사생활을 침범할 수 있는 블랙박스 부가기능(실내 촬영 및 녹화)에 대한 규정은 빠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택시업계에 대량 보급되는 다채널 블랙박스가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법적 근거나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박종원 HK이카 이사는 “공공교통분야에서 블랙박스 영상이 사고처리를 위한 본연의 목적에만 쓰이도록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