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국내 개봉 외화 최초로 1000만 관객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고 IT업계는 아바타 쇼크로 3D 시장에 올인하고 있다. 영화 한 편이 패션과 유행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산업지형까지 바꾸는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영화 아바타에는 스펙터클한 3D 화면 외에도 미래사회의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는 숨겨진 코드를 발견하는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영화 아바타는 서기 2154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외계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 토착민 나비족의 저항과 독성을 지닌 대기로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인간들은 나비족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해 원격조종하는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켜 토착민을 회유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는 죽은 형을 대신해 ‘아바타 프로그램’에 자원하고 자유롭게 걷는 신체의 자유를 되찾게 된다. 제이크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족 무리에 침투한 후 나비족의 여전사 네이티리를 만나서 자연과 조화되는 그들의 철학과 생활방식에 조금씩 동화된다.
아바타를 통해 신체적 결함을 극복한 제이크는 판도라의 울창한 정글을 뛰어다니고 하늘을 나는 새로운 삶에 이끌려 끝내 인간으로서 자아를 버리고 아바타의 세계로 건너간다. 이 와중에 인간의 군대가 숲을 짓밟자 나비족은 생존을 위한 절망적 싸움에 나선다.
지구의 거대기업이 막대한 돈이 되는 희귀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첨단무기로 판도라 원주민을 내쫓는다는 대결구도는 미국 서부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진부한 스토리다. 하지만 압도적인 3D 영상으로 펼쳐지는 판도라 행성의 장관 앞에서는 그저 경탄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2시간 42분 동안 편광안경을 끼고 지구를 떠나 먼 외계행성에서 새로운 삶을 체험한다.
영화 아바타의 미덕은 멋진 3D 영상 외에도 줄거리 자체가 인간의 심리특성을 고려한 보수적 미래기술 전망에 기초한 덕택에 관객 시각에서 공감할 여지가 높다는 점이다. 스타워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같은 기존 SF영화에서 흔히 나타나는 논리비약이나 극단적 상황설정은 아바타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영화 아바타에서 묘사된 22세기 중반 인류문명의 모습은 21세기 초반과 비교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미래학계에서는 자원고갈과 같은 환경 제약 때문에 과학기술의 발전속도가 지연될 가능성에 점점 주목하고 있다. 아바타는 첨단기술의 진보를 무조건 예찬하거나 혐오하는 SF영화의 전형적 공식에서 벗어난 수작이다. 영화는 현대인이 본능적으로 예감하는 미래 세상의 화장기 없는 모습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공감대를 얻었다.
◇100년 후, 세상은 얼마나 바뀔까.
영화 속에서 판도라 행성에 파견된 대기업 용병들이 쓰는 무기를 보면 어딘지 낯이 익다.
우선 주인공 제이크가 아바타의 몸으로 휴대하는 개인화기를 보자. 광선총이 아니라 M60 기관총을 개조한 형태다. 믿기지 않지만 22세기 군인도 탄띠와 기관총을 들고 다닌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비행기도 두 개의 로터를 돌려 좁은 장소에서 뜨고 내리는 설계구조가 현재 헬기와 별 차이가 없다.
원시부족만 사는 외계행성에 강력한 화력의 중화기를 배치할 필요성이 낮다는 점을 감안해도 영화에서 묘사된 무기체계의 발전속도는 꽤 느린 편이다. 혹자는 머지않아 무인비행기, 무인전차 등 첨단무기가 주도하는 로봇 전쟁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지난해 미 국방부는 로봇 기반의 무인전장을 만드는 ‘미래형 전투시스템(FCS)’ 개발계획을 대폭 축소했다. 금융위기로 미국 정부의 재정사정이 어려워진 때문만은 아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군을 제압하려던 군당국자들이 무인전투체계의 비현실성을 스스로 깨달은 탓이다.
과학자들은 혼란한 전투상황에서 병사를 대신해 무인로봇 혼자 적절한 상황판단을 내리기란 불가능하며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완벽한 자율형 로봇장비를 제조하는 비용 역시 너무 높아 실용적이지도 않다.
박용운 국방과학연구소(ADD) 박사는 “최근 국방 분야에서 무인로봇장비의 일차 개발목표는 100% 자율형보다는 반자동화된 원격제어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아바타에는 스타워즈의 R2D2처럼 스스로 사람 흉내를 내는 자율형 로봇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악당 마일즈 대령이 조종하는 로봇 형태의 앰프슈트는 사람의 움직임을 증폭시켜 큰 힘을 발휘하는 작업도구일 뿐이다. 앰프슈트는 지게차, 굴삭기처럼 조종하는 사람이 없으면 전혀 작동을 못한다는 측면에서 구식 장비에 해당한다. 그러나 강력한 기계를 제어하는 데 쾌감을 느끼는 인간심리를 정확히 반영한 설계라는 점에서 현실화될 개연성이 높다.
인간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동차 운전을 직접 하는 큰 이유는 페달을 밟으면서 강력한 힘과 지배력을 온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서 모든 작업을 해내는 첨단 로봇장비를 개발해도 높은 가격과 신뢰성 문제를 감안하면 결국은 아바타에 나오는 앰프슈트처럼 사람이 조종하는 전통적 모델의 효용성이 가장 뛰어나다. 여기에는 주도권을 기계에 빼앗기기 싫어하는 인간의 보편적 심성도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 네트워크에 판정패하다.
영화에서 의료공학과 바이오 기술은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다.
주인공 제이크는 원주민 회유공작을 도우면 손상된 다리를 새로운 장기로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제이크의 형을 모델로 만든 아바타는 인간과 나비족의 유전자를 섞어서 만들어졌다. 생명공학의 꾸준한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22세기에는 아바타와 같은 변종을 탄생시키는 일도 충분히 가능할 법하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제이크의 몸은 기지 안에 있지만 정신은 아바타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걷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의 두뇌를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신체의 신경조직과 완벽하게 동기화할 정도로 통신기술은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제이크와 아바타를 연결하는 접속 신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이 없었다면 영화의 기록적 흥행은 조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은 이미 카메라폰을 거쳐 청각, 시각정보의 실시간 전송을 접하고 있기에 영화의 설정에 자연스럽게 공감했다.
영화의 원격제어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캐나다의 영화감독 롭 스펜스는 어릴 적 다친 한쪽 눈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고 자신이 보는 사물정보를 타인과 공유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영화 감독의 한쪽 의안이 카메라란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이제 누군가의 삶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데 필요한 기술 장벽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타인의 몸을 빌려서 물리적 삶의 공간을 확장하는 아바타의 접속장면은 초고속 네트워크의 확산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근미래의 모습이다.
영화 아바타는 그동안 인공지능(로봇)의 비약적 발전을 가정한 미래사회 시나리오에 대폭적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도 암시한다. 상상해보라. 지구상 누구와도 시청각 정보와 지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일상 속에서 기계장치의 판단에 의존해야 할 이유는 크게 줄어든다.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는 초고속 네트워크의 접속기능은 아직도 유치원 수준에 머무는 인공지능의 존재감을 점점 무색하게 한다.
아바타는 지난 20세기 노동을 돕는 로봇(robot)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21세기는 네트워크를 통한 자아확장의 도구, 아바타(avatar)의 시대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깊숙히 각인시켰다. 지금은 사이버 공간이 아닌 현실세계에서 삶을 공유하는 아바타 사업에 적극 도전해 볼 시기다. 영화를 보고서 아바타란 제목에 담긴 메시지는 간과한 채 3D 테마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 멍청하긴, 핵심은 아바타라니까!(Stupid, it’s Avatar!)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