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부회장의 `도전`

 “우리 역사상 최초로 무적함대로 바다를 개척한 장보고를 참 좋아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사를 뒤져보면 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대항해를 최초로 실현한 분도 장보고인 것 같습니다. 중국·한국·일본의 바다를 신라인들의 일터로 가꾸며 어려운 시절 새로운 터전을 다졌습니다.”

 이상철 통합LGT 부회장은 해상왕 장보고의 삶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바다로 눈을 돌려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했던 그 장보고 말이다. 이 부회장이 지향하는 삶의 목표도 그렇다.

 이 부회장의 국내 통신산업 도전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시작됐다. 미국 나사에서 일하다 귀국한 이 부회장은 한 우물만 파지 말고 이종교배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서정욱 당시 KT 부사장(현 명지대 석좌교수)의 권고로 1991년 초 KT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통신망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사업개발단 단장을 맡아 최초로 시도한 것이 ISDN으로, 국내 최초 개발이라는 도전 타이틀을 획득했다.

 KT 무선사업본부 초대본부장으로서 SK텔레콤과 경쟁한 것도 그에게는 뜻 깊은 도전이다. 이후 1996년 KTF 대표이사를 맡아 ‘Over SKT’를 캐치프레이즈로 자신의 통신부문 도전기를 새롭게 썼다. 018을 인수한 후에는 빌 게이츠와 만나 ‘이제는 컴퓨터 말고 휴대폰에 미쳐보라’고 투자를 권유해 즉석에서 2억달러를 유치했다. 빌 게이츠는 이후 5억달러를 추가로 이 부회장에게 내줬다.

 KT 사장 시절에는 기존 납품업체의 기득권을 없애고 단독납품조건으로 장비단가를 40만원에서 14만원으로 낮춰 조기에 초고속인터넷 1000만회선 시대를 열기도 했다.

 KTF 대표이사로 있을 때는 6개월 동안 12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면서 최단 기간 내 최다 가입자를 확보하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소리가 보인다’라는 광고 카피를 몸소 만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년 정통부 장관으로 취임, 재직 중 DMB와 와이브로 등과 같은 최첨단 서비스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됐다. 지금은 이미 상용화된 서비스다. 번호이동제도를 도입해 통신업계 경쟁을 촉진시키고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돌려줬다. 2002년 국내 펀드매니저들로부터 ‘펀드매니저들이 뽑은 최고경영자부문’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1999년에는 한국통신학회로부터 통신경영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운대 제7대 총장으로 부임한 이 부회장은 ‘CEO 총장론’을 내세우며 ‘IT(정보기술) 특성화 대학’으로 바꾸어 놓았다. 취임식 날에는 교내에서 바비큐파티를 준비하며 학생들과 함께 어울렸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떡국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