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리튬 2차전지의 항공 운송을 규제할 방침이어서 우리나라 2차전지와 휴대폰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미국 내 제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안전을 이유로 사실상 비관세 무역장벽을 강화한 조치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미 수출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는 세계 최대 2차전지 생산·수출국인 일본과 공조해 미국의 자유무역 저해 의도에 대응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20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에 따르면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30일 리튬 2차전지를 비행기로 운송하게 되면 총무게를 제한하고, 폭발을 막기 위한 특수포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안전규제안 입법을 예고한 후 행정부가 이를 지난 11일 관보에 게재했다. 또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를 포함한 각국에 오는 3월 12일까지 관련 의견 제출을 요구했으며 이르면 3월 말 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리튬 1차전지의 폭발 위험성이 커 규제가 까다로웠지만 2차전지는 상대적으로 안전성이 높아 예외 조항이 적용돼 왔다.
미국이 예고한 대로 안전규제를 강화하게 되면 리튬 2차전지를 사용하는 휴대폰과 노트북의 항공 수출이 까다로워진다. 관련 비용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대미 수출액이 83억달러로 전체 IT제품 수출액의 절반 이상인 휴대폰 부문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은호 기표원 기술규제대응과장은 “리튬 2차전지는 매우 안전하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만약 이 안전규제가 그대로 시행되면 리튬 2차전지를 탑재해 주로 비행기를 이용, 수출하는 휴대폰과 노트북 등의 고가품 수출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대응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안전성만을 강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미국 내에서 리튬 2차전지와 관련한 소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중고 휴대폰 운송 과정에서 기내 화재사고 발생 사례가 보고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미국과 같은 규제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경부는 업계, 관련 기관과 함께 지난 11일 1차 대책회의를 가진 바 있다. 오는 25일 2차 대책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장은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무엇보다 리튬 2차전지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데 있다”며 “우리와 함께 대미 수출에 타격이 예상되는 일본 등과 공조를 통해 의견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기표원을 중심으로 2차전지의 안전한 포장 방법 연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2차전지 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규제 조건을 맞추려면 2차전지 항공기 운송 포장에만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 기업 차원에서도 이와 관련해 전지 안전성을 높이고 경제적인 포장 방식을 연구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에 휴대폰을 수출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의 구체적인 대응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현 시점에서 방침을 내놓는 것은 섣부르다는 판단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내부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다”며 “정부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사태추이를 더 살펴보고 대응전략과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역시 같은 입장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리튬 2차전지 비행운송 규제는 업계가 대응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안전규제가 그대로 시행되면 그때 가서 대응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