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에 있어 10주년의 의미는 남다르다. 대기업과 다국적기업의 틈바구니 속에서 10년을 버텨냈다는 ‘성과’ 한편으로 벤처를 넘어 중견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과제’를 동시에 안겨준다.
오는 29일 10주년을 맞는 슈퍼컴퓨팅 솔루션업체 클루닉스의 권대석 사장(41)도 마찬가지다. 권 사장은 “10년 전만 해도 중소 경쟁업체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몇 개 남지 않았으니 나름 선방했다”면서도 “이제는 사업적으로 도약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권 사장은 10년 전 박사 학위를 받은 ‘클러스터 슈퍼컴퓨터 개발’ 논문을 바탕으로 대학원 후배들과 함께 지금의 클루닉스를 창업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기업에 취직을 앞두고 있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미국에 기술 팔지 말고, 조국을 위해 국내에서 창업하라”며 지원해줘 창업을 결심했다.
이 같은 창업 과정은 ‘인류를 위한 슈퍼컴퓨팅’이라는 사시에 그대로 녹아있다. 권 사장은 “인류의 역사는 드물고 비싼 상품이 대중화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구하기도, 사용하기도 힘든 슈퍼컴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사시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회사는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왔다. 슈퍼컴 시장이 국내 기업에는 불모지나 마찬가지여서 힘든 상황도 있었지만 슈퍼컴 솔루션 전문기업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점프’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대로 지난 10년에 아쉬움이 없진 않다. 권 사장은 “매출이 매년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 10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며 “올해는 서버업체나 IT서비스업체와 손잡고 고객을 늘리는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사업 측면에서도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클루닉스는 슈퍼컴 솔루션 공급이나 구축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슈퍼컴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있다. 요즘 말로 하자면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권 사장은 “미국의 구글도 결국은 ‘검색’이라는 응용서비스로 벤처에서 글로벌회사로 도약한 기업”이라며 “클루닉스도 슈퍼컴을 활용한 응용서비스로 새로운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권 사장은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을 대학에서 슈퍼컴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며 보냈고, 21세기의 첫 10년은 슈퍼컴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 데 썼다. 그는 “다행히 제품의 차별성이나 완성도가 높아져 이제는 슬슬 도약할 준비가 된 것 같다”며 “앞으로 또 한번의 10년은 새로운 도약을 이루는 기간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