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송희의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흔히 어린이 만화로 구분된다. 그럴 것이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이고, 출판사 분류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만화’로 나눠져 있기 때문이다.
만화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소설처럼 1인칭, 3인칭 하는 식으로 시점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시점 혼재가 곧잘 등장하는 만화에서는 시점을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이런 자전적 만화는 비교적 시점 정리가 명확하다. 결정적 순간에 늘 1인칭 화자가 해설자로 개입해 상황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1인칭 해설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송희의 감정을, 그리고 처한 상황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공간 배경은 전라남도 광주다. 전남 강진(만화의 구분에 의하면 시골)에서 살다 대도시로 이사 온 딸 부자집(딸 일곱에 아들 하나)의 막내 송희가 주인공이다. 작가는 1971년에 태어났다. 이 만화는 작가가 일곱살이 되었을 때이니, 1977년이다. 1977년이면 1950∼1960년대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시기이며, 1978년 2차 석유파동이 오기 이전에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서서히 성과를 보이던 때였다.
1977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수출 100억달러 달성’이다. 수출 100억달러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하는 달콤한 구호로 활용되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난 것 같은, 아니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선전이 가득했던 시기였다. 무너진 농촌에서 대도시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공순이, 공돌이로 불리며 노동을 착취당했고,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벌며 내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애썼다. 가난과 희망이 오버랩되던 그런 시대였다.
과거를 회상하는 만화들로 설명하자면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짱뚱이 시리즈’와 ‘안녕 자두야’의 중간 지대에 있는 만화다. 1977년이란 상황은 ‘짱둥이 시리즈’와 ‘안녕 자두야’의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 시대며, 광주라는 공간도 ‘짱뚱이 시리즈’의 지리산 자락과 ‘안녕 자두야’의 서울 사이에 절묘하게 위치한 공간이다.
이 중간성은 시간과 배경뿐만 아니라 작품 그 자체에도 내재되어 있다. ‘옥상에서 보는 풍경’은 과거 생각만 해도 뭔가 좋았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회고형 만화와 과거 내 자신의 상처와 갈등과 극복을 보여주는 자전 만화 사이에 있다. 과거의 에피소드(짝과의 관계, 첫사랑, 동무들과의 관계 등)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한참 몰입해서 읽다 보면 우리는 1977년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간 꼬마 정송희의 내면도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그것은 지금 그 당시를 회고하는 서른아홉 정송희 작가의 내면이다. 따라서 이야기는 과거의 기억이 마냥 좋았다기보다는 그 당시 일곱 살 주인공의 기분이 어땠을까에 대해, 복기하고, 정리하는 자전 만화의 모습에 도달한다.
때문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자전적 해설은 1977년의 시점이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오늘의 시점에서 발화된다. 그리고 오늘에서 발화해 과거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1인칭 해설을 들으며, 우리도 또한 지금 내 자리에서 멈추어 지나온 과거를 바라보게 된다. ‘옥상에서 보는 풍경’의 옥상은 아마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삶은 어떤 풍경을 하고 있나요? 이 만화는 어린 독자들이 보기보다는 어른들, 서른아홉 정송희 작가의 내면에 공감할 수 있는 어른들이 보기에 더 좋은 만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enterani@c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