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말뿐인 SW 제값받기

 얼마 전 국내 소프트웨어(SW) 업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요즘 국내 시장에서 더 이상 비즈니스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SW업계 출혈경쟁이 너무 심각해져 제값받기는 이미 포기한 지 오래고 제안 가격의 70%만 받아도 황송하다는 것이다. 다수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경쟁하는 만큼 어느 정도의 가격 협상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70% 받기는 커녕 70% 할인된 가격으로도 공급하기 어렵다고 이 업체 대표는 토로했다.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이 업체 대표를 한숨짓게 한 것은 한 기관의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다. 고객사는 제안요청서에서 8억원대 구축을 예상했다. 하지만 2억원대의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이 비용에는 솔루션과 컨설팅, 구축이 모두 포함된다.

기자가 궁금한 것은 SW 제값이란 무엇을 기준으로 하며, 이 우선협상대상자는 남들의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어떻게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고객사 확보 차원에서 일단 수주하고 보자는 것일까, 아니면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여기서 믿는 구석이란 여유자금 혹은 다른 지속적인 매출원일 수 있고 혹은 프로젝트 이후 유지보수요율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에겐 요원한 일이다. 유지보수요율을 최고 22%까지 받는 오라클이나 SAP 등 외산 소프트웨어 업체들이라면 모를까,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법으로 정해진 8%의 유지보수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또한 유지보수요율은 도입 비용, 즉 라이선스 비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초도 가격이 낮다면 시스템 구축 이후 유지보수요율에 대한 기대 역시 접어야 한다.

 가격 일변도의 소프트웨어 도입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공공기관의 일정 규모 이상의 소프트웨어 도입 시 기술과 가격을 8:2의 비중으로 검토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일단 기술이 뛰어나야 하고, 기술이 백중세를 이루는 공급업체들을 2차로 걸러내는 기준이 가격이라는 취지다. 최근에 추진된 우정사업정보센터의 전자금융시스템 성능개선 사업에서는 기술과 가격 비중을 9:1로까지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효성이 없다고 SW 업계나 고객인 공공기관은 머리를 가로지른다. 한 공공기관 전산 담당자는 “경쟁하는 기술 업체들 대부분이 기술 수준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결국 20%의 비중에 불과했던 가격에서 결정나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정말 이 공공기관 관계자 말대로 기술이 상향평준화된 것일까. 혹시 80%의 기술 면면을 판단할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기술의 90%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더라도 10% 혹은 그 이하에서도 차별성과 변별력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면 기술 80%의 배점 제도가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SW 업체 또한 자사만의 변별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신생 벤처들은 대기업 혹은 성공한 벤처에 근무하던 개발자들이 나와 만든다. 이전 회사에서 개발하던 기술을 모태로 동일하거나 거의 유사한 제품들을 만들어 다시 시장에 내놓는다. 기술이 거기서 거기라는 고객들의 주장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SW 사용자와 제공업체의 공멸을 막기 위해 도입한 여러 제도들이 효과를 보려면 결국 사용자와 솔루션 업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