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말한 대로 이뤄진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의 말이다.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고 부단히 노력하면 어느 순간 꿈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줬다.
새해 국내 다국적기업들이 다시 희망을 말하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턴 어라운드’다. 지난해 바닥을 확인하고 다시 뛰겠다는 각오다. 최악의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은 저력이 두둑한 밑천이다. 더러는 CEO부터 현장 영업맨까지 일신했다. 마침 정보기술(IT) 경기 선행지수도 좋다. 반도체·디스플레이는 1분기 비수기도 건너 뛸 태세다.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포메이션을 바꾸면서 그 어느 때보다 신시장을 향한 도전이 뜨겁다.
◇메이저가 더 공세적=스티븐 길 한국HP 사장은 지난달 1일 부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2010 회계연도의 최우선 키워드로 ‘성장’을 제시했다. 그는 “30여개 전략 고객군에 대한 밀착영업을 강화해 마이너스 성장기조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구체적인 액션플랜까지 내놓았다.
한국MS와 인텔코리아는 나란히 ‘신병기’를 내놓고 PC시장의 부흥에 나섰다. ‘윈도7’과 ‘인텔 코어 i3·i5·i7 프로세서 패밀리’로 대대적인 PC 교체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각오다.
시스코는 지난해 중반 조범구 대표체제로 재편한 이후 환골탈태 수준으로 기업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라우터, 스위치 전문 업체로 인식되던 기존의 시스코 이미지에서 벗어나 네트워킹 기술을 기반으로 일상 생활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환경, 도시 환경 등의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국내 디지털카메라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캐논코리아는 다시 소비자 눈높이에 맞춘 혁신경영에 착수했다. 내달 소비자용 디지털 제품 전문 매장인 ‘캐논 스토어’를 개장하는 것이 첫 포문이다.
이른바 ‘리딩 컴퍼니’들이 ‘성장’과 ‘혁신’을 화두로 삼으면서 후발 다국적 기업에도 공격적인 사업 기조가 빠르게 전파되는 추세다.
◇CEO부터 일대 혁신=변화에 맞춘 조직 혁신 바람도 거세다. 무엇보다 SW업계의 CEO 세대교체 바람이 두드러진다. 오토데스크코리아, 퀘스트소프트웨어코리아, VM웨어코리아, 한국넷앱, 레드햇코리아 등이 사장이 바뀌었거나 신임 사장을 물색 중이다.
HW와 디바이스 업계도 마찬가지다. 작년 시스코코리아, 한국HP 사장이 전격 교체된 데 이어 델코리아·TI코리아 등도 CEO가 교체됐다.
이 같은 CEO 교체는 실적과 무관치 않다. 가트너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작년 불과 2% 성장에 그쳐 아태지역 4대 시장(한국, 중국, 호주, 인도)에서 가장 더딘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잇따른 CEO 교체는 경제 불황 여파로 침체된 조직을 쇄신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해외 본사 차원에서 40대 중반의 젊은 인사를 사장으로 선호하는 곳도 적지 않아 단순한 사장 교체를 넘어 세대교체가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신사업 승부수=재도약을 위한 뉴 비즈니스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후지쯔, LG히다찌 등 일본계 컴퓨팅업체들은 아예 역수출 비즈니스 모델까지 들고 나왔다. 본사 제품을 판매하는 다국적기업의 공급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한국의 솔루션을 본사로 역수출하는 획기적인 개념이다.
스마트폰·클라우드 컴퓨팅 등 떠오르는 시장공략도 두드러진다.
모토로라코리아는 안드로이드폰 ‘모토로이’를 출시하고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정조준했다. 퀄컴코리아도 스마트폰용 플랫폼 ‘스냅드래곤(Snapdragon)’에 주력할 예정이다. 한국MS는 ‘윈도 폰’이 한국 시장에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힘을 모은다. 스마트폰용 솔루션업체들은 국내 시장공략을 위해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휴대폰 업체와 연합전선에도 사활을 걸 태세다.
클라우드 컴퓨팅 역시 올해 각광받는 ‘신천지’다. 범정부 차원의 육성 전략이 지난 연말 발표되면서 더욱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한국IBM·한국HP·한국EMC·VM웨어 등이 협력 비즈니스까지 펼치며 시장을 개척할 방침이다.
IBM은 1990년대 초 고객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내부의 목표만 추구하다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래서 얻은 교훈이 언제나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에 따라 변화를 추구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IBM은 결국 하드웨어 위주에서 벗어나 정보기술과 경영전략을 결합한 솔루션 서비스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해 새로이 도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올해 재도약을 꿈꾸는 다국적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턴 어라운드의 성패는 철저한 반성을 통해 고객의 눈높이에 얼마나 빨리 맞춰가는지에 좌우될 것이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