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권 핫이슈 중 하나는 KB금융지주 이사회에 대한 개혁 논의다. 지난해 KB금융지주 회장 선출과 관련해 불거진 문제가 현재는 KB금융지주 이사회의 문제점으로 확산된 상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사외이사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소문까지도 흘러나온다. 여기에는 국민은행의 IT와 관련한 내용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IT아웃소싱이나 차세대시스템 기반 하드웨어 선정시 일부 사외이사의 압력이나 개입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 금융감독원 최종 검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상태라 사실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해당 은행도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문에 불과하다고 해도 이러한 이야기들이 시장에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겠냐’라는 식으로 이번 사안을 보고 있다. 사외이사가 실제로 압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도 중요하지만 이번 일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준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국민은행이 대규모 IT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외부 영향에 시달렸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비단 국민은행이나 KB금융지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국내 시중은행들은 다른 산업의 기업들에 비해 막대한 IT비용을 집행하고 있다. 적게는 1000억원, 많게는 4000억원 규모에까지 육박한다. 웬만한 중견그룹에서 전 계열사의 연간 IT예산을 모두 합쳐도 몇백억원에 불과하다는데, 시중은행 1개의 연간 IT 예산이면 대여섯 중견그룹이 나눠 쓰고도 남을 돈이다.
시중은행이 진행하는 IT프로젝트 규모가 이토록 거대하다보니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해 많은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심지어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프로젝트 구축 사업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많은 비용을 로비 자금으로 쓰기도 한다. 해당 프로젝트에서는 수익을 남기지 못해도 다음 프로젝트 수주를 위한 확고한 레퍼런스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런 과정에서 간혹 부정 거래가 발생되기도 했다. 이후 은행들은 대규모 IT프로젝트 추진시 발생될 수 있는 부정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막기 위해 은행 내부에 투자심의위원회를 설치하기도 하고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장치들은 일반 직원들이나 임원에 의한 부정은 예방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물급의 부정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
은행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추진하는 대규모 IT프로젝트는 해당 기업의 비즈니스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기업 생존과도 연관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대규모로 추진되는 IT프로젝트에는 그 어떤 힘도 영향을 미칠 수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 그 어느 누구의 힘이라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적어도 대규모 IT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사회 결정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형태는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내외부 전문가 등 다수가 참여하는 전산투자심의위원회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과거 의혹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KB금융지주 사외이사가 최근 사퇴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해당 기업과 당사자 둘 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더 이상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사외이사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는 제기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제도적 조치가 취해지길 바란다.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