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하이브리드카 상용 모델인 일본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도요타 프리우스는 지난 한 해 20만8876대가 팔려 세계 최고 인기 차종으로 등극했다. 2008년 판매치의 2.8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는 도요타가 1997년 세계 최초로 하이브리드카를 제품화한 후 12년 만에 만들어낸 성과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선도하는 모델이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GM, 벤츠, 포드, 혼다, 크라이슬러 등 세계 각국의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친환경 전기차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고유가와 환경규제, 화석에너지 고갈이 엔진 중심의 세계 자동차시장의 지각변동을 부르고 있다.
이 같은 자동차시장의 변화는 2차전지 업계엔 새로운 거대 시장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간 2차전지 수요는 휴대폰과 노트북 등 소형 IT 기기에 머물렀지만 이제 대용량의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중대형 2차전지로 확대된 것이다. 특히 아직 2차전지가 완전히 가솔린을 대체할 만큼 에너지 밀도와 힘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싸고, 힘 좋고, 오래 가는’ 배터리를 만들려는 각 국의 경쟁은 치열하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향후 자동차 산업의 패권이 갈리기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 강국 앞세워 2차전지도 독주 태세=친환경 전기차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시장 선점에 나선 곳은 일본이다. 일본은 자동차와 전지 분야 강국이다. 일본은 지난 2007년부터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 로드맵을 마련, 2012년까지 5년간 85억엔의 자금을 투입해 차세대 자동차용 2차전지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개발 완료 후 가격은 현재 전지 가격의 7분의 1, 성능은 1.5배 향상이다. 또 2030년에는 배터리 가격을 현재의 40분의 1로 줄이고, 성능은 7배 향상시킨다는 목표다.
이러한 노력은 일본 산업계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는 전기차 시장의 70%가량을 점유하면서 일본 전지업체 사업 확대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파나소닉은 도요타의 급속한 하이브리드카 생산 확대에 힘입어 전 세계 40%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미야기현에 새롭게 생산라인을 증설, 연간 80만개의 자동차용 배터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파나소닉 외에도 혼다와 닛산, 미쓰비시 등 자동차 업체들이 일본 전지 업체와 손잡고 신차 및 관련 신형 배터리 출시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닛산과 NEC의 합작법인인 AESC, 미쓰비시와 GS유아사의 합작법인인 리튬에너지재팬, 혼다와 GS유아사의 합작법인 블루에너지 등이 대표 주자다. 판매 대상국도 일본을 넘어 미국과 유럽, 중국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즉 자동차 업체와 2차전지 업체가 두 바퀴로 나란히 세계 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약점은 있다. 일본은 기존 니켈수소(NI―MH) 전지 중심의 전기차 개발에 집중, 향후 중심축이 될 리튬이온 전지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특히 도요타는 지난해 파나소닉과 손잡고 당초 리튬이온 전지를 채택한 프리우스 신차를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올해로 연기했다. 이유는 리튬이온 전지 개발에서 기술적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무섭게 추격하는 중국=중국은 급성장하는 수요에 힘입어 저가 제품을 주로 공급하고 있다.
중국의 리튬 2차전지는 선진국에 비해 성능이 낮고 신뢰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휴대폰 관련 수출이 연평균 55.1%나 늘었고, 자국내 모바일 기기의 확산으로 수입도 같은 기간 연평균 66.8% 증가함으로써 수요와 비례해 경쟁력이 크게 축적된 게 사실이다.
최근에는 휴대폰을 넘어서 고급 기술인 노트북PC용 원통형 리튬이온 전지와 하이브리드 전기차용으로까지 기술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업체는 BYD다. 이 회사는 모토로라의 70%, 노키아의 10∼15% 물량을 소화하는 리튬 2차전지 최대 업체다. BYD는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고 내수시장 중심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BYD는 지난 2008년 12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용차 ‘F3DM’을 세계 첫 출시했다. 아직 신뢰성은 낮지만 폴크스바겐이 전기차용 배터리 개발 합작을 시도한 만큼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도 제10차 5개년 계획의 하나로 전기자동차 산업화 실행계획을 수립, 산학연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연간 1000억원의 개발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자국 내 중국산 전지 사용 확대를 행정지도를 통해 지원, 중국산 전지의 사용률이 50%까지 증가했다.
◇자동차 강국들 신차 개발 집중=미국은 에너지부(DOE)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 원천기술 개발을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려잡았다. 지난 2006년 2400만달러였던 지원 금액은 2007년 4000억달러, 2008년엔 4200억달러로 증가했다.
미국은 자국 내 리튬 2차전지 산업 기반이 취약해 초기 시장에서 일본이나 한국 등 해외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조인트벤처와 한국 업체 등이 배터리 연구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존슨컨트롤과 샤프트배터리의 조인트 벤처인 JCS와 LG화학의 미국 자회사인 CPI가 각각 2006년부터 가격 경쟁력과 고출력 특성을 중심으로 리튬전지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의 빅3 자동차 업체는 일본 및 우리 업체와 제휴해 2차전지 개발을 맡기고 관련 신차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유럽 역시 2차전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됐지만 현재 관련 산업이 없어 폴크스바겐, BMW, 벤츠 등 자동차 업체들은 한국 및 일본 업체와 짝을 이뤄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이산화탄소 배출과 무공해차 관련 규제 강화로 업체 간 개발 경쟁이 심화돼 친환경차의 조기 실용화가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은 자동차 CO?배출량을 2012년부터 130g/㎞로 규제하는 법안이 지난 2007년 12월 공표됐고,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2005년부터 자동차 판매 시 친환경차를 일정 물량 판매해야 하는 무공해차 규제를 적용 중이다.
◇일본 독주를 막아라=일본의 자동차용 전지시장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우리나라는 현대기아차라는 글로벌 자동차업체와 세계적인 전지업체를 보유한 것이 강점이다. 현대기아차는 물론이고 LG화학과 삼성SDI 등 우리나라 2차전지 업체들은 전기자동차용 전지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전지업체들은 휴대폰과 노트북PC를 중심으로 축적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글로벌 자동차 업계와 제휴에도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LG화학이다. 이 회사는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을 가동 중이고, 2013년까지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세계적인 2차전지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중대형 전지사업과 관련해 지난해 현대차가 국내 최초로 양산한 하이브리드카 ‘아반떼’와 기아차의 ‘포르테’에 리튬이온폴리머전지를 단독 공급했다. 이 회사의 제품은 기존 하이브리드카에 주로 적용된 니켈수소전지에 비해 무게가 35%나 가볍고, 충돌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한 4중 안전설계로 안전성까지 겸비했다. 또 GM의 HEV ‘볼트’ 생산에 참여, 2015년까지 2차전지를 단독으로 공급하게 된다.
삼성SDI와 보쉬의 합작사인 SB리모티브도 BMW가 2012년에 상용화할 전기차에 2차전지를 공급하기로 계약을 맺는 등 향후 친환경 전기차 시장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한편, 정부도 지난해 전기차 양산 계획을 2년 앞당겨 2011년으로 정하고 법·제도 정비와 관련 산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15년 세계 전기차 시장의 10%를 점유, 2020년 국내 소형차의 10% 이상을 전기차로 보급하는 등 향후 명실상부한 글로벌 전기차 4대 강국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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