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참사를 계기로 정부의 지진대책이 크게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기통신설비를 보호할 지진대책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파연구소가 만든 전기통신설비의 안전성 및 신뢰성에 대한 기술기준 개정안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신설 또는 증축되는 IDC 서버, 유무선 통신장비, 스토리지, 기지국 등에 지진피해를 막는 면진설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면진설비는 지진이 일어날 때 건물바닥이 흔들리는 진동파를 차단시켜 전산장비 손상을 막는 보호장치이다.
신규 정보통신설비에 면진설비가 의무화된 지 약 3개월이 지났지만 돔테크널리지·삼익THK·아이디폰 등 관련업체의 매출 증가세는 미미한 수준이다. 평소보다 제품문의는 크게 늘었지만 대형 통신사나 IDC센터가 지진피해에 대비해 면진설비를 대규모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없다. 주요 IT시설에 처음 지진대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에서 면진설비의 성능을 시험하는 과정이 너무 까다롭다. 전파연구소는 면진설비와 컴퓨터랙의 조합에 따라 피해정도가 달라진다는 이유로 제품단위로 인증을 주지 않고 설치유형에 따라 각각 시험성적서만 받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내서는 부산대·한국기계연구원·산업기술시험원 세 곳만이 면진설비 테스트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기업체 입장에서 설치방식이 바뀔 때마다 안전성 시험을 다시 받아야 하는 면진장비의 도입을 망설이게 된다. 공공기관은 권장사항, 민간통신사업자는 의무사항으로 지정된 IT지진대책의 모순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개정안은 기간통신사업자, 별정통신사업자, 전송망사업자는 반드시 지진대책을 갖추도록 강제하고 있다. 반면 국가 공공기관, 지자체는 해당설비에 대한 지진대책이 단지 권장사항으로만 표시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소방청·철도청·경찰과 같은 국가기관 통신망이 지진피해로 마비될 경우 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데도 면진설비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또 임대건물에 설치된 통신장비를 지진대책 의무화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파연구소는 지진대책과 관련해 불거진 문제들을 단계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박수영 전파연구소 연구사는 “면진설비를 제품단위로 시험과정을 간소화하고 소방방재청과 협의해 공익성을 갖춘 정부기관의 전기통신설비는 지진대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